6개월 준비한 조직 개편안 무산
지배구조 다시 원점...플랜B 필요
업계 "대안 마련에 속도 높여야"
사업구조 개편 작업을 실패로 끝낸 두산그룹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개편 무산에 더해 원전·로봇 등 주력 산업 생태계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당장 합병을 재추진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신속한 전략 재수립을 통해 불확실성을 잠재워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지난 10일 합병 철회 발표 이후 추가 투자자금 확보 및 성장 가속화 방안을 모색하며 플랜B 준비에 한창이다.
당초 두산그룹은 원전 사업 강화를 위해 두산에너빌리티의 재무구조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개편 작업으로 1조2000억원을 마련해 원전과 SMR 사업의 생산능력 확대한다는 입장이었다. 정부의 친원전 정책에 힘입어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겠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외생 변수로 인해 이같은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두산그룹이 '비상 계엄'이라는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에 의해 철회를 결정한 만큼 당장은 대안을 내놓지 못할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다만 '정부 기능 마비' 수준의 여파가 두산그룹이 영위하고 있는 산업으로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대안 마련에 속도가 붙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로 업계는 '정국 혼란' 여파로 향후 원전 사업 수주에 차질이 있을 수 있단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장 내년 3월 본계약을 앞둔 체코 원전 사업은 차질이 크지 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지만, 문제는 폴란드, 영국, 튀르키예 등 추후 진행될 원전 프로젝트 참여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데 있다.
현재 국내 정국은 사실상 정권 교체를 향해 흘러가고 있다. 당장 원전 정책에 우호적이지 않은 정부의 출범도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 당시 탈원전 정책으로 큰 타격을 입은 원전 산업이 윤석열 정권을 통해 되살아나는 듯 했지만 '비상계엄' 직격탄을 맞으며 또다시 불확실성이 짙어졌다. 다음 정부의 등장과 함께 또다른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상황으로, 해외에서도 정권에 따라 원전 정책이 크게 흔들리는 국가에 프로젝트를 맡기지 않을 것이란 평가다.
김대욱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전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위원)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원전 정책의 향방이 바뀌는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순 없다"면서 "아무리 한국의 원전 기술력이 상당하다고 해도 이런 상황은 경쟁력 저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원전 산업이 침체할 때 큰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두산에너빌리티는 다양한 포트폴리오가 있어서 생존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우려되는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두산에너빌리티 만큼 차질이 빚어진 두산로보틱스도 자체적인 경쟁력 향상을 이끌어낼 수 있는 플랜B 준비에 속도가 붙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근 글로벌 로봇 시장은 가파른 성장가도에서 멈칫하며 위축되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 산업용과 협동로봇 시장 모두 2023년부터 역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로봇연맹(IFR)의 '월드 로보틱스 2024'에 따르면 2023년 글로벌 산업용 로봇 신규 설치 대수는 54만1000대로 2022년보다 2.2% 감소했다. 협동로봇 신규 설치 대수도 5만7000대로 2022년보다 1.7% 감소했다. 협동로봇의 신규 설치 대수가 감소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이에 두산로보틱스의 부진 탈출도 요원해졌다. 올해 3분기까지 연결기준으로 누적 매출 353억 원, 누적 영업손실 243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2.3% 줄고 영업손실은 51.5% 불었다. 2015년 두산그룹이 로봇 사업을 미래성장 동력으로 낙점한 것에 비해 초라한 성적표다.
이런 상황에서도 로봇이 유망산업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어, 현 시점이 더 큰 도약을 위한 '숨고르기' 국면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특히 로봇산업은 인공지능(AI) 기술을 발판삼아 더 크게 확장할 가능성이 크다. 자동화 기술을 요구하는 로봇은 AI와 결합할 때 파급력은 배가 될 것이란 평가다.
한재권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는 "협동로봇 시장은 현재 성장 가속도가 잠시 줄어든 것이지 여전히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는 산업"이라면서 "두산로보틱스는 이미 많은 곳에 침투하고 있지만, 한층 더 성장하기 위해선 새로운 수요처 발굴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교수는 "결국 인공지능이 협동로봇과 이를 기반한 두산로보틱스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협동 로봇을 어떻게 인공지능과 결합하며 시너지를 낼 것인지 고민하고 전략을 짜야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개편 작업이 실패한 것이기에 두산 입장에선 마땅한 대안 마련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면서 "새로운 합병 플랜보단 사업전략을 재수립하며 당장의 위기 국면을 돌파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