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한 사람의 악행이 세계를 중독시킬 수는 없다

2025-09-12

미국 사회를 넘어 세계적인 공중 보건 위기로 부상한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 문제, 이른바 '오피오이드 위기'는 통상 1996년을 출발점으로 본다. 미국 제약사 퍼듀파마가 80년 역사의 진통제 옥시코돈의 약효 지속 시간을 대폭 늘린 서방정 제제 '옥시콘틴'을 이때 출시했다. 대부분 약물이 그렇듯 올바르게 복용하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부수거나 가루를 내서 흡입할 경우 12시간 분량의 약효가 한꺼번에 방출돼 마치 헤로인같은 효과를 냈다.

소문은 금세 퍼졌다. 옥시콘틴은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중독성 낮은' 진통제로 분류했기에 처방도 구입도 손쉬웠다. 판매량은 수직 상승했고 제약사는 돈방석에 앉았다. 옥시콘틴은 심각한 중독성 문제로 2010년 판매가 중단될 때까지 총 720억 정이 팔렸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만 20만 명이고 수백 만 명의 중독자가 탄생했다. 이들은 옥시콘틴을 살 수 없게 되자 다른 약물을 찾았고 ‘펜타닐 좀비'라는 더 큰 중독으로 이어지게 된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제약 참사로 불리는 이 비극은 현대사회를 흔드는 거대한 악행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다. 한 기업의 악행만으로는 이 정도 규모의 참사가 일어날 수 없다. 배경에는 언제나 기업의 악행을 감시해야 할 당국, 비극을 막아야 할 전문가들(의료계·언론) 등 눈앞의 수익에 정신이 팔려 문제를 외면한 공모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책은 이처럼 조직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 ‘공모’의 문제를 파헤친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범죄들을 주요 사례로 다루지만 그 주인공은 범죄자가 아니라 공모자인 것이다. 저자는 공모를 ‘명백한 공모’와 ‘일상적 공모’ 두 가지로 분류한다. 옥시콘틴의 위험을 알면서도 처방 등급을 낮춰준 심사관이 명백한 공모라면 약물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환자가 강력히 원하니 마지못해 처방전을 발급해준 의사는 일상적 공모로 구분될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관행에 순응하다보니 자연스레 범죄에 가담하게 된 평범한 사람들에 포커스를 맞춘다. 우리가 공모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악행을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비윤리적 행위에 가담할 것을 권유받을 경우 거절하는 연습을 미리 해두고, 윤리적인 선택을 강행할 때 나를 지지해줄 관계를 미리 확보해두라는 등의 조언을 이어간다. 물론 이런 노력이 쉽지는 않다. 심지어 노력해도 공모자가 되는 일을 완벽히 피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모의 위험성을 알고 자신의 경험을 돌아본다면, 적어도 악인의 범죄가 사회 전체에 해악을 미치는 규모로 확대되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권력자의 성범죄를 가능하게 한 시스템에 목소리를 높인 정상급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 공화당 소속이면서도 트럼프의 탄핵을 이끈 밋 롬니 상원의원처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큰 용기를 낸 사람들의 사례가 희망을 준다.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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