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현 군산대 명예교수 '제적부' 통해 정정렬-정원섭 형제 사실 확인
"선양사업 본격 추진 근거 마련…사업 추진해야"

각종 후문만 난무하던 판소리 근대 5대 명창 떡목 정정렬 명창과 당대 최고의 명고수 정원섭이 형제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확인된 제적부에는 명창 정정렬은 정명섭(丁明燮)으로 고수 정원섭은 정중렬(丁仲烈)로 나오기 때문에 그동안 확인이 어려웠으나, 오랫동안 판소리 연구에 전념해 온 최동현 군산대 명예교수가 그 둘이 부모가 같은 형제간으로서 정정렬과 정원섭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28일 최동현 군산대 명예교수는 “최근 정정렬 명창과 정원섭(정중렬)이 형제라는 사실과 그들이 함께 살았던 주소지를 확인했다”며 “당시 사람들은 다양한 이름을 썼기 때문에 제적 확인이 어려웠으나 부모의 성명과 정정렬 명창의 묘지 사진, 정정렬과 정원섭의 생년월일 등의 비교를 통해서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형 정정렬과 동생 정원섭의 본적지가 파악됐고, 이들 모두 망성면을 본적지로 두고 있다”고 부연했다.

정정렬(1876~1938) 명창은 익산 망성면(현재 미동마을)에서 태어났다. 오랜 수련을 통해 ‘국창(國唱)’으로 이름을 날렸고 서편제 명창으로 유명하다.
7세부터 정창업 문하에 들어가 소리 공부를 시작했고 10세부터 이날치에게 배운 뒤 오랜 기간 독공을 하여 마침내 근대 5명창으로 일컬어지는 대명창이 됐다. 훗날 미륵산의 심곡사와 부여 무량사, 공주 갑사 등지를 떠돌며 40세까지 소리를 공부했다고 한다.
성음이 탁하고 음량이 부족하며 상성(上聲)이 막혔으나 수십 년간 수련한 결과 명창으로 성공해 ‘떡목’ 정정렬로 부르고 있다.
특히 정정렬 명창은 서편제의 맛깔 나는 성음과 교묘한 부침새로 춘향가를 새로 만들다시피했다. 그의 춘향가는 당시 신식 춘향가로 일컬어졌는데 정정렬 명창의 제자인 동초 김연수 선생이 “정정렬 나고 춘향가 새로 났다”고 말할 정도였다.
정원섭(1878~미상) 명고수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 활동한 판소리 고수다. 처음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형인 정정렬 명창의 북을 도맡아 치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일제 강점기에 나온 많은 음반에서 장단을 맡았다.
익산국악원에서는 그동안 정정렬 명창을 기리고 추모하는 ‘떡목음악회’와 ‘익산 판소리‧고법 경연대회’ 등을 개최하며 그의 업적을 알리는 데 집중해 왔다. 지역사회에서도 정정렬 명창에 대한 연구와 추모 사업을 이어갔지만 정원섭 명고수에 대해서는 업적이 잘 알려지지 못했다. 실제 정정렬 형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선양사업은 시작도 못한 상황이다. 솜리예술회관에 ‘국창 정정렬 명창 추모비’를 세운 것이 전부이다.
따라서 이번에 발견한 사실을 바탕으로 정정렬 명창과 정원섭 명고수의 선양 사업을 지자체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동현 교수는 “정정렬과 정원섭 형제의 제적과 살던 위치 등이 확인됐으니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며“정정렬은 1930년대 우리나라 최고의 소리꾼이자 판소리를 창극으로 바꾸는 작업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화 이후 서구화가 진행되면서 판소리가 절멸의 위기에까지 이르렀으나 , 이제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판소리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고 가장 중요한 우리 민족문화의 하나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며 "판소리는 ‘인류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세계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판소리 역사상 불멸의 대명창과 명고수에 관한 선양사업이 지금부터라도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