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태권도신문] 『국기원 50년사』 공동 집필자 중 한 명인 김영선 집필자가 지난 20일 한국태권도신문에 올라온 '국기원 50년사, 관 통합에 헌신한 ‘송무관’은 왜 기록에 누락되었나.’ 칼럼에 대한 반론을 아래와 같이 밝혔다.
『국기원 50년사』 ‘1관(송무관) 공로자 누락’
기고문에 대한 반론
『국기원 50년사』 서적 내용 중 ‘제1관 송무관(이하 1관으로 칭함) 총관장 누락건‘에 대해 이 웹신문을 통해 남궁 대표님의 비판 기사가 공개되었습니다. 글의 내용 중에 ’국기원은 성의 없는 50년사 발행‘ 그리고 ’기록에서 제외된 태권도 1관 출신에 대한 상실감과 소외감 조성을 야기한 것은 무도인으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와 도리를 송두리째 저버린 행위‘란 문구까지 거론되었습니다.
이 글을 접한 본인은 당혹감을 느끼면서 50년사 서적 자체의 존재 가치까지 평가절하되고 있는 사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이 반론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 본문을 작성한 당사자인 필자는 이 글을 통해 명백히 밝힙니다. 『국기원 50년사』 서적은 결코 무성의하게 집필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찬사를 받아야 할 보기 드문 역작‘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그 서적이 ‘50년사 특집본(국영문 합본)’에 걸맞게 9명의 참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정성껏 작업하고 출판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기회에 ‘1관 총관장’이 왜, 어떻게 서두에서 제외되었는지 그리고 관 통합과 관련해서 ‘송무관 대표자의 서명’에 얽힌 어떠한 내막이 있었는지 그 원인과 결과를 소상히 밝히고자 합니다. 우선 문제시된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서적의 89쪽에는 ‘관 통합에 헌신했던 공로자’란 제목으로 2관부터 9관까지 공로자의 사진과 해설이 실려 있습니다. 언급한 대로 ‘1관 공로자’는 이 글에 분명히 빠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독자들은 1관 총관장이 왜 제외됐는지 의아스러울 수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1관을 무시한 처사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관의 단락의 이어지는 뒷부분까지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즉 ‘국기원을 세우고 바탕을 다진 인물’ 단락에서 1관이 무시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해야 할 공로자로서 강원식 님과 이영섭 님, 두 분이나 등재됨으로써 1관의 명예를 드높였다고 생각합니다.
강원식 님은 당시 1관의 총관장이자 KTA 전무이사였습니다. 그 분은 1관 총관장직 보다 ‘관 통합의 실질적인 추진자’로서 역할이 더 중요했으므로 뒷부분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강원식 님은 관 통합을 주도한 핵심 인물로서 1관 총관장직에 위치하기보다는 관 통합 주도자 란에 구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강원식 님은 관 통합에 반발하는 세력들의 온갖 획책을 감수하며 관 통합의 선두에 서서 과감하게 관 통합을 결행한 장본인입니다. 잘 아시듯이 그 분은 국기원 원장을 역임하셨던 태권도계 핵심 인사입니다(애석하게도 바로 1달 반 전에 별세하셨습니다). 그분의 이력과 업적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50년사 서적의 94쪽에 실려 있습니다.
1관 출신의 두 번째 분은 ‘국기원 품새 공
로자’인 이영섭 원로입니다. 이 분은 국기원 품새 공로자로서 ‘국기원을 세우고 바탕을 다진 인물’ 단락의 뒤쪽에 나와 있습니다. 이영섭 님은 1관의 2대 총관장 직을 역임하셨을 뿐만 아니라 KTA 이사, 파견위원장, 태권도 기관지 편집위원장, 국기원 품새 강사 등 여러 방면에서 태권도와 국기원 발전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1972년 KTA 명의로 발간된 『태권도 교본 ; 품세(품새)편』 교본에서 이영섭 님은 ‘품새 평원’과 ‘십진’을 시연했습니다. 『국기원 50년사』 서적의 95~96쪽에 그 분의 경력과 업적이 사진과 함께 해설돼 있습니다.
이렇듯 『국기원 50년사』에는 두 분의 1관 출신 인사가 배정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국기원 공로자 중 KTA 회장직을 제외한 총 13명의 명단 중 1관 출신자가 두 분이나 실린 셈입니다. 이는 1관 출신자가 다른 관에 비해 실질적으로 높은 비율에 속합니다. 이같이 1관 공로자 명단이 두 분이 배정된 상황에서 서두 1관 총관장이 명단에서 제외된 연유는 다른 관과의 형평성을 고려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남아 있습니다. 1978년 관 통합 서명서에 1관 대표자로 날인한 ‘전정웅’ 님에 대해서입니다. 필자는 이 분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 없었습니다. 이 분이 1978년 1관 대표로 서명을 했기에 어떠한 연유인지 그리고 1관 총관장이 맞는지 또 관 통합에 어떠한 공로가 있는지 등에 대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강원식 님께 이번 ‘50년사 서적 공로자 서술건’에 대해 의논드리자 강원식 님은 다음 세 가지 견해를 제게 전했습니다.
첫째, 1978년 관 통합 서명 당시, 난 KTA 전무이사를 맡아 관 통합을 주도했다. 50년사 서적 내에 ‘관 통합 추진자’로 내가 별도로 실리게 된다면 구태여 ‘1관 총관장 란’에 나를 중복해서 표기할 필요는 없다. 1관을 포함한 모든 관을 해체하고 협회와 국기원으로 귀속시키는 마당에, 내게는 관 통합 추진자의 역할이 역사적으로 더 의미가 크다.
둘째, 1978년 관 통합 서명서에 1관 대표자로 전정웅 씨가 서명했지만 전 씨는 1관의 총관장이 아니다. 당시 내가 관 통합 추진자로 별도 직책이었기 때문에 사정상 1관 총관장 대표로 서명할 수가 없어 대신 전 씨를 추천했다. 그해 나는 KTA 전무이사로 있으면서 같은 1관 소속인 전 씨를 KTA 기획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전 씨를 1관 대표로 관 통합 서명에 동참시킨 것도 임시방편으로 짜맞춘 대안이었다.
셋째, 만일 1관을 대표하는 총관장으로 전 씨를 포함시키면 협회 원로 인사이자 총관장 반열에 전 씨가 올라가게 되는거라 모양새가 좋지 않다. 전 씨는 송무관 총관장이 아닐 뿐만 아니라 관 통합에 공헌한 바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로자 14명 중 1관 소속자가 3인이나 선정되면 1인 밖에 없는 다른 여러 관으로부터 큰 불만이 제기될 것이다.
이와 같이 50년사 서적에 1관 총관장이 제외된 것은 1관 내부의 복잡미묘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구절절한 내용을 50년사 서적에 언급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1관 관련자의 입장이나 관점에서는 다소 오해도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가 50년사 서적에 나온 공로자 단락 전체를 숙독하고 이 글을 통해 그 내막을 이해한다면 그러한 오해가 풀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1관을 포함한 전 9개관이 합의한 ‘관 통합’에 관해서는 50년사 서적의 359~377쪽에 별도로 해설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국기원 50년사』는 ‘1관 차별화’로 확대해 서적의 존재 가치가 절대 폄하되어서는 안됩니다. 50년사 서적은 당시 국기원 부원장의 관할 업무로 추진되어 집필자, 간사, 윤문자, 회의 기록자, 번역자까지 총 9명이 5개월의 짧은 기간 동안 6차례 회의를 통해 심사숙고해서 편찬한 충실한 결과물입니다. 본인을 포함한 4명의 집필자는 50년에 걸친 국기원의 다채로운 발전사는 물론 「국기 태권도의 내실화」, 「관 통합」 등 태권도의 정체성과 더불어 태권도 정신과 기술, 교본 등 주요 콘텐츠까지 핵심적이고 다채로운 내용을 갖가지 시각 자료와 함께 간명하게 정리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끝으로 이 글과도 관련된 ‘1관의 형성과 변천’은 현대 태권도사 연구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노병직 창설자에 의해 광복 이후 북한 지역인 개성에서 시작된 1관은 그 형성과 변천, 관 통합에 이르기까지 30여 년간 파란만장한 역정을 거쳤습니다. 1관의 활약상은 국기 태권도의 역사문화적 정체성과 기술 혁신적 관점 그리고 해외 보급 발전사를 주제로 상세히 연구되어야 합니다. 장문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기사는 한국태권도신문 편집 의도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