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기고에서 인공지능(AI) 융합의 본질을 기술 총합이 아닌 '사람 중심의 의미 있는 연결'로 강조한 바 있다. 최근 정부는 'AI 현장 대화'를 통해 국가 AI컴퓨팅센터 구축 등 AI 대전환의 청사진 및 실행 계획들을 연이어 발표하며 AI 강국의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국가적 도전 앞에서, 우리는 다시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노력은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 기술의 눈부신 진보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능적 연결 사회'의 본질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가?
최근 정부의 AI 전략 발표들은 국가적 의지와 신속한 실행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2026년 시행될 AI 기본법의 '고영향 AI' 정의 및 범위 모호성 등은 산업 혁신 저해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지난 21일 국회 토론회에서 논의된 AI 거버넌스 문제 역시 같은 맥락이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될 국가 AI컴퓨팅센터가 단순 연산 능력 경쟁에 매몰되어 사회적 가치 창출과 삶의 질 개선이라는 본질을 놓친다면 '기술을 위한 기술'로 전락할 수 있다. AI로 인한 일자리 불안, AI 격차, 프라이버시 침해 등 기술 발전의 그림자도 간과할 수 없다.
AI 국가 전략이 단순한 기술적 성취를 넘어, 모든 국민이 체감하는 '지능적 연결 사회'로 이어지려면 다음과 같은 실천이 병행되어야 한다.
첫째, 공동 설계(Co-design)를 제도화해 AI 거버넌스에 국민의 시각을 투영해야 한다. AI 기본법의 실효성을 높이고 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고영향 AI 판단 기준 및 윤리 가이드라인 수립 과정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시민, 최종 사용자 그룹의 참여를 보장하는 '개방형 AI 윤리·거버넌스 플랫폼' 구축이 시급하다. 특히, 설명가능한 AI(XAI) 기술의 연구개발 지원을 확대하고 공공 서비스 도입 시 설명 의무를 강화해 기술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둘째, 국가 AI 인프라를 '모두를 위한 혁신 놀이터'로 개방해야 한다. 신규 국가 AI컴퓨팅센터와 공공 AI 플랫폼은 연구 및 산업 발전에도 필수적이지만, 공공성과 포용성을 최우선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중소기업, 스타트업, 비영리 단체 등이 사회문제 해결(AI 기반 돌봄 서비스, 환경 문제 해결 등)을 위한 공익적 AI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도록 자원 할당 및 기술 지원에 우선권을 부여하고 데이터 접근성을 확대해야 한다. 최근 시행된 공공데이터법의 취지를 살려, 데이터 개방과 함께 효과적인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를 확립하여 데이터의 질과 활용도를 높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세 번째, AI 인재 양성을 '미래 사회의 공감형 설계자' 육성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부의 AI 인재 양성 사업 확대는 시의적절하지만, 기술 개발자를 넘어 AI 기술의 사회적 영향을 깊이 이해하고 윤리적으로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는 '공감형 AI 전문가' 육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해 공학 교육에 인문·사회학, 윤리학, 법학 등 다학제적 융합 교육을 강화하고 다양한 사회 구성원과 소통 및 협업 능력을 배양하는 프로젝트 기반 학습을 확대해야 한다. AI로 인한 직업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 국민 대상 AI 리터러시 교육 강화와 노동 시장의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기 위한 평생 직업 능력 개발 시스템 고도화도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AI 국가 전략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그러나 이 여정의 성공은 단순히 빠르고 강력한 AI 기술 개발에 있지 않다. 그 기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 사회의 복잡한 문제 해결에 '연결의 지혜'를 제공하며 그 과정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포용하는가에 달려있다.
쏟아지는 정책과 기술 발표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사람'이다.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잠재력을 확장하고 더 나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여야 한다. 이를 위해 기술 개발부터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혜택은 공정하게 공유되며 위험은 투명하게 관리되는 '사람 중심의 AI 생태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결국 AI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며 사람을 향한 '연결의 지혜'가 그 답이다. 질문을 바꿔야 미래가 바뀐다. '어떤 AI를 만들 것인가?'를 넘어 'AI를 통해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근원적 물음 앞에,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기술의 힘과 인간적 가치가 조화롭게 빛나는 진정한 AI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