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시중은행이 가계 대출 문을 좁힌 대신 ‘기업 모시기’에 공을 들인다. 금융당국이 ‘6ㆍ27 대출규제’ 이후 은행권의 하반기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를 연초 대비 50% 줄이면서다.
22일 은행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은 대출금리 우대 한도를 높이고, 특판 대출 상품을 판매하는 등 기업대출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하반기 ‘금리 우대 프로그램’ 한도를 추가로 1조5000억원 확대했다. 연간 우대 한도는 기존 8조원에서 9조5000원으로 늘었다. 우대 한도가 늘면 영업 현장에선 대출 금리를 낮춰 기업 고객을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은행도 상반기 6조6000억원에 이어 3분기에도 4조6000억원 상당의 대출금리 우대 한도를 제공할 계획이다. 하나은행은 기존 ‘주거래 우대 장기대출’ 등 기업 대상 특판 대출 한도를 8조원 추가로 늘렸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권 관계자는 “(당국 규제로) 가계대출 영업에 제동이 걸리다 보니 하반기 먹거리는 기업대출뿐”이라며 “은행들이 기업대출로 눈을 돌리면서 영업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공급이 대기업에 쏠려있다는 점이다. 5대 은행(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ㆍNH농협은행) 대기업 대출 잔액은 이달 18일 기준 165조5357억원으로 올해 들어 5조9147억원 불어났다. 올해 5대 은행의 기업대출(대기업+중소기업) 증가액(8조7728억원)의 67%를 차지했다. 이와 달리 중소기업 대출 잔액(663조8597억원)은 대기업 대출 잔액의 약 4배인데도, 올해 1조6307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중 자영업자(개인사업자) 대출액은 지난해 말 323조1096억원에서 이달 18일 321조4112억원으로 오히려 1조6984억원 쪼그라들었다.
은행들이 우량 기업을 선호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올해 경기 부진과 수출 둔화로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이 들썩이고 있어서다.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평균 0.55%로 1년 전(0.44%)보다 0.11%포인트 올랐다. 대기업 대출 연체율(0.11%)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1분기 기준 1.88%를 기록했다. 2015년 1분기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빚을 못 갚는 기업이 늘고 있다"며 "재무건전성 측면에서 은행권도 담보가 확실하거나 우량한 중소기업을 발굴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의 기업 대출도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시적으로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 위주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빚으로 연명’하는 기업을 늘리는 건 한국 경제에 부담이 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