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1년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과속운전 혐의로 흑인 로드니 킹이 경찰에 체포됐다. 백인 경찰은 체포 과정에서 킹을 무차별 구타했고 그 모습이 뉴스로 방영됐다. 흑인과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문제로 비화한 ‘로드니 킹 사건’은 전국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듬해 4월 29일 배심원단이 기소된 경찰관들에게 무죄 평결을 내리자 분노한 흑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도로를 막은 흑인들이 백인 트럭운전사를 끌어내 집단 폭력을 가했다. TV로 생중계되는 화면과 함께 도시 전역에 폭력의 불길이 번져나갔다. 이른바 ‘LA 폭동’의 시작이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한국계 교민이었다. 코리아타운은 흑인 밀집 지역과 가까운 곳에 있었고, 한인과 흑인 사이의 감정적 앙금도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경찰은 폭동이 백인 거주지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찰 병력을 해당 지역에 밀집시켰다. 교민들은 자경단을 조직(사진)해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자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2300여 한인 업소가 약탈당했거나 전소해 재산 피해액이 4억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LA 폭동은 흑인에 대한 차별,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질시, 백인들의 위기감과 법질서의 편파성 등 미국의 어두운 면을 총체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미국 내의 해묵은 갈등과 분노가 엉뚱한 곳으로 향한 것이다. 주 방위군이 투입되고 나서야 진정되기 시작해 5월 3일 마무리되었다.
이 폭동을 낳은 요인은 여전히 존재한다. 심지어 지금은 정치적 올바름과 문화적 다양성을 둘러싼 논란에 가난한 백인들의 소외와 분노까지 뒤엉킨 상태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재선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9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그는 중국을 견제한다면서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에도 관세 폭탄을 던지고 있다. 미국과 세계는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