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세번째 고속도로

2024-09-22

물자와 사람을 이동시키는 수단이 바로 도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시사하듯이 로마 제국이 넓은 영토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를 중심으로 잘 닦여진 도로의 힘이 컸다. 물론 도로의 중요성은 지금이 더 크다. 엄청나게 높아진 생산력으로 수많은 상품과 사람들이 이동하는 현대 경제에서 도로는 인체의 혈관과 같이 한시라도 막힌 곳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고도 성장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이다. 당시의 경제력에 비춰봤을 때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은 무모한 일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의 반대가 있었고, 건설 과정에서 희생자도 많이 나왔다. 그러나 완공된 경부고속도로는 한국의 산업 성장을 뒷받침하는 버팀목이 됐다.

이후 한국 경제는 흔히 ‘IMF’라고 부르는 외환위기를 1997년말에 맞았다. 많은 기업의 도산과 구조조정으로 모두가 힘든 시절이었지만 우리 정부는 전국 어디서나 빠르게 접근이 가능한 통신망 확충사업을 추진했다. 인터넷의 보급과 정보산업의 발전이라는 새로운 추이를 국가 발전을 위한 디딤돌로 삼으려는 시도였다.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앞서 정보 고속도로를 놓는 데 성공했다. 당시 한국보다 인터넷 속도가 빠른 나라는 거의 없었다. 이를 기반으로 전자정부가 가능해졌고, 다양한 신산업부문에서 창업이 이뤄졌다. 오늘날 한류와 케이(K)-문화도 탄탄한 정보화 기반 위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가장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두개의 고속도로를 만들어 경제 성장에 성공한 우리에게 세번째 고속도로 구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오늘날 세계는 기후변화로 인한 인류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국제적인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근년에 들어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주춤거리고 있다. 인공지능(AI) 분야의 폭발적 성장과 더불어 전력 수요가 세계가 예측하지 못한 수준으로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 각국은 에너지 생산을 늘리기 위해 발전소 건설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안전에 대한 우려로 한동안 주춤했던 원자력 발전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와 함께 생산된 에너지를 수요가 있는 산업 현장으로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송전시설로는 더 많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보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 많은 에너지를 한꺼번에 보낼 수 있는 에너지 고속도로의 구축이 절실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력 수요가 많은 반도체산업 등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주로 동해안에서 생산되는 에너지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송전선로가 지나가고 변전소가 들어서는 지역에서 시설 구축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전기를 공급해야 하는 일반론에는 찬성하지만 자기가 사는 지역에 그 시설이 들어오는 것은 싫은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우리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국가 전력망 구축을 지체할 수 없다. 피해를 우려하는 주민들에게는 충분한 설명과 보상을 통해 수용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대량의 에너지를 빠르게 전달하는 세번째 고속도로는 선진 경제로 막 접어든 한국 경제가 성장 지속성을 확보하고 나아가 한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김대래 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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