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고, 방치되고…야생성 잃은 동물들 어디로 가야 할까

2024-09-15

보통의 직장인이면 출근길에 갑자기 동해로 핸들을 돌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있지 않을까? 여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가득 찬 시내버스가 있다. 시내버스는 정해진 노선을 벗어나 난데없이 동해로 가는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내려달라고 아우성쳤지만 버스 운전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운행에만 집중했다. 얼마 후 사람들은 자포자기하여 조용해졌다. 어쩌면 그중 일부는 일상을 벗어난 엉뚱한 상황에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도심 속 노선을 순환하던 시내버스도 가다서다의 무한 반복의 운명을 거스르며 고속도로를 맘껏 달렸다. 시내버스 아니 고속버스는 결국 바다에 도착했고 버스 운전사는 승객들을 내려줬다. 풀려난 사람들은 모처럼 보는 바다에 표정이 밝아졌다.

버스 운전사는 곧 경찰에 붙잡혔다. 취재기자들이 이유를 묻자 버스 운전사의 대답은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서”였다. 바다에 간 사람들은 버스 운전사의 처벌을 원치 않았고 덕분에 버스 운전사는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었다. 과거 해외 토픽에서 읽었던 기사다.

바람이의 딸 암사자(D)를 강릉에서 청주로 데려오고 일주일이 지나 다시 강릉 S동물원으로 향했다. 출장이지만 출근의 일상은 아니었으니 바다로 향한 버스 운전사를 떠올리며 차를 몰았다. D를 데려오는 날 시간이 없어 못해줬던 다른 동물들의 이동조치를 위해서 가는 길이었다. 여전히 날씨가 더워 이른 아침 동물들을 마취 후 이동해야 하기에 전날에 도착해서 정동진역 인근 숙소에 묵었다. 바다 가까운 곳이라 침대에 누워 파도 소리를 들었다.

대학 시절 어느 겨울, 대학 동기와 등산하려던 오대산을 지나 정동진에 잘못 내렸다. 1990년대 <모래시계>라는 드라마에 등장한 정동진은 연인들의 성지였다. 마침 새해 첫날, 많은 연인이 서로 온기를 나누며 해를 기다리고 있었고 민망한 남자 둘은 괜스레 어묵 국물만 축내며 오대산행 기차를 기다렸다.

여름 새벽 정동진은 한산했지만 아주 다르지 않았다. 소나무숲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강아지가 보였다. 반가워서 아무 이름이나 부르자 다가와 쓰다듬기 좋게 머리를 내밀었다. 곧이어 나타난 보호자로 보이는 스님이 유니폼을 입은 내가 수의사인 걸 아시고 강아지들의 사연을 들려주셨다. 여름휴가철이 지나면 바다에 강아지들이 남겨진다고 한다. 한번은 입이 묶인 채 자루에 담긴 강아지도 데려왔다고 한다. 이 다정한 친구도 주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스님께 다음에 강릉에 오면 강아지들을 보러 가겠다고 약속하고 S동물원으로 향했다.

세 번째 오는 S동물원은 익숙했다. 매표소를 돌아 동물들과 가까운 후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혹시 모를 응급상황을 대비해 호흡 마취기와 산소통 등을 실은 차가 인근에 있어야 했다. 동물원 대표에게 도착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마취 준비를 했다.

오늘 이동할 동물은 곰 세 마리와 하이에나 두 마리였다. 젊은 대표는 물려받은 동물원의 동물들에게 애정이 있었다. 개인 동물원에 흔한 먹이 체험 프로그램도 없었고 입장료 이외 다른 수입까지 모두 동물사를 새로 짓는 데 투자하고 있었다. D처럼 폐업하는 실내동물원 동물들의 임시 보호도 해주고 있었다. 오늘 옮길 동물들도 동물원 간 이동이지만 좀 더 나은 환경으로 가는 것이라 도와주기로 약속했던 것이었다. 동물원법이 강화되어 열악한 동물원들이 없어지길 바라고 있지만 현재 동물원에 머물고 있는 동물들이 있기에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오는 2028년 12월13일까지 부여된 동물원법 유예기간 동안 동물들이 방치되어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며 동물원법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거점동물원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마취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기온은 상승했다. 짧은 시간 내 다섯 마리의 동물을 옮겨야 하기에 효율적인 마취와 회복 전략이 필요했다. 나이가 많지 않은 동물들이라 안전하게 마취 모니터링을 하는 것보다 신속하게 옮기고 빨리 회복시키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야생동물의 마취를 위해서는 블로건(원거리 동물에게 약물을 주입하는 파이프 모양의 장비)을 사용한다. 잠시 관찰해보니 작은 곰들은 사육사들이 다가서면 먹이를 주는 줄 알고 창살에 매달렸다. 사육사가 사과 조각을 든 손을 높이 들어 올리자 곰도 따라 창살을 타고 올라왔다. 바로 내려오지 못하는 위치에 곰이 창살에 매달렸을 때 손 주사기로 농축한 약물을 뒷다리에 재빨리 투여했다. 블로건 사용보다 시간이 훨씬 단축됐다.

하이에나는 하는 수 없이 블로건 주사기를 불어 마취약물을 주입하기로 했다. 하이에나는 보기보다 겁이 많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흥분하며 뛰기 시작했다. 더운 날 흥분하여 뛰어다니면 체온이 급상승해서 위험하다. 정신을 집중해 뒷다리 근육에 블로건 주사기를 날렸다. 10분이 지나자 비틀거리기 시작했고 잠시 후 움직임이 없었다. 장대로 몸을 건드려 마취상태를 확인하고 나서 안에 들어가 하이에나의 몸을 만져보니 뜨거웠다. 마취된 하이에나를 소형 손수레에 싣고 신속히 이동하여 대형선풍기로 몸의 열을 식혔다. 회복제를 놓고 동물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다섯 마리를 옮기는데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다행히 사고 없이 모두 회복했지만 응급이 아닌 이상 여름철 마취는 지양해야 맞겠다 싶었다.

청주동물원으로 옮겨온 암사자 D는 사람들에게 친근하다. 블로건을 쏜 나를 보면 응당 피할 거라 생각했는데 친한 고양이처럼 창살을 비비며 호감을 표한다. 동물복지사들이 소방호스로 만들어준 장난감을 천진하게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그냥 아주 큰 고양이다. 이런 성향의 사자는 사람이 젖병을 물려 인공 포육한 개체인데 혹여나 사람을 너무 좋아해 야생성 있는 다른 사자와 지내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바람이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딸 D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오히려 영역에 들어온 다른 사자에 대한 경계와 호기심은 두 사자의 앉는 방향을 바꾸었다. 시간이 지나며 바람이는 D에게 무심해졌지만 암컷 도도의 신경은 온통 D를 향해 있다. D를 보러 갔다가 뒤통수가 서늘해져 돌아보면 암컷 도도의 눈빛이 매섭다.

D는 청주동물원에 처음 도착하고 나서 이동장 문을 열자 격리 방사장으로 망설임 없이 나왔다. 그러나 오랫동안 시멘트 바닥에 익숙해져서인지 내실 바닥을 편하게 여기고 격리방사장의 흙과 풀의 감촉은 낯설어한다. 격리방사장에 익숙해져야 바람이와 도도가 사는 메인 방사장과 연결된 통로에서 마주보기를 할 수 있지만 서두르지 않고 사자의 시간으로 기다린다.

바람이는 딸을 만났지만 나는 딸 다민이와 떨어진 지 2년이 흘렀다. 캐나다에 있는 딸은 며칠 전 중학교에 입학했다. 처음 등교하는 사진을 아내가 보내왔는데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딸아이의 뒷모습이 설레어 보였다. 바람이 딸과 나의 딸의 우연한 선택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또 그 여정 중에 잘못 탄 기차나 버스가 더 멋진 목적지로 데려다주기도 하니 걱정보다는 삶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기를 바란다. 다민아, 네 아빠가 된 게 내 삶의 최고 영광이다!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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