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장편소설 〈할매〉 출간 기념 간담회
천연기념물 지정된 군산 팽나무에서 영감
“인간 사회·문명 다시 생각할 계기 됐으면”

“얼마전부터 오른쪽 눈이 안 보인다. 한쪽 눈으로 버티는데, 그래도 (집필을) 해보니 쓸만하다. 벌써 다음 작품을 쓰고 싶어 몸이 움찔한다. 앞으로 두세 편은 더 쓸 수 있겠다 생각한다. 소설이 힘들면 일기 형식으로라도 죽을 때까지 쓰겠다.”
소설가 황석영(82)이 신작 장편 <할매>를 들고 돌아왔다. 9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여든이 넘어서도 현역에서 집필 활동을 하는 노작가의 심정에 대해 “늙은 작가의 소망은‘ 백척간두 진일보’, 정말 새로운 작품을 쓰고 싶은 것”이라며 “‘할매’를 굉장히 힘들게 썼다. 하지만 덕분에 다음 작품은 더 잘 되겠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할매>는 지난해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라 화제가 됐던 <철도원 삼대>(2020) 이후 황 작가가 펴낸 5년 만의 신작이다. 마을의 수호신이자 ‘할매’로 불리는 팽나무를 주요 소재로 한 소설로 팽나무의 싹을 틔운 새 한 마리의 여정으로 시작해 약 600여년간 나무를 스쳐간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조선조 경신대기근을 비롯해 동학농민운동부터 일제강점기를 지나 분단 국가에서 미군 기지 확장으로 인해 벌어지는 갈등,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인한 환경 파괴의 현장까지 팽나무는 인간의 역사를 곁에서 함께한다.
작가가 거주하는 전북 군산에 실제 존재하는 팽나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그는 “군산시에서 집필관을 마련해 줘 내려갔다. 문정현 신부를 만났는데, 그가 그곳에서 환경운동가들과 미군 기지 용지로 결정돼 수용된 마을의 팽나무를 지키는 활동을 하는 것을 알게 됐다. 말년에 조용히 글을 쓰려고 했는데, 또 문젯거리를 만났다”며 “환경운동가의 시선은 아니지만, 지구 전체의 시선으로 작품을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00년된 팽나무의 시선으로 관계의 순환과 카르마의 이전을 보여주는 작품을 써봤다”고 말했다.
작품의 시초가 되었던 군산의 팽나무는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그는 “이제 함부로 나무를 베지 못한다. 내가 죽어도 팽나무는 앞으로 몇 백 년 더 살 수도 있을 거다. 소설을 통해 인간이 이룩해 낸 사회와 문명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소설의 초중반까지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는 “작가로서 사람이 빠진 서사를 쓰는 것이 어색하고 힘들었는데, 쓰다 보니 내가 쓴 문장에 빠져 ‘내가 이런 산문을 처음 쓰는구나’하는 기쁨과 놀라움을 경험했다”며 “헤밍웨이가 만년에 ‘노인과 바다’를 쓰면서 느낀 자연과의 교감과 상통하지 않을까 한다. 젊었다면 이런 느낌을 못 받았을 것 같다. 앞으로 여기에서 확장된 소설을 쓰게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