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메이저리그를 가다] 골프 선수들의 무기고, ‘투어 밴’

2025-08-24

3월 초,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의 베이힐 리조트. PGA 투어 시그니처 대회인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한 귀퉁이엔 대형 트럭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골프 투어는 매주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아다니며 쇼를 하는 유랑 서커스단이라고 하기도 한다. 트럭들은 얼핏 보면 서커스단의 이동차량 같기도 하다.

트럭은 모두 13대. 타이틀리스트, 캘러웨이, 테일러메이드, 핑 같은 거대 용품사 트럭부터 샤프트 전문 회사, 심지어 골프 용품을 만들지 않는 나이키까지—선수들의 장비와 옷, 심지어 신발까지 책임지는 ‘움직이는 본부’가 그곳에 모여 있었다.

이 트럭들의 이름은 ‘투어 밴(Tour Van)’. 골프판에서는 흔히 ‘투어 트럭’ 혹은 ‘용품 트럭’이라 부른다. 내부는 선수들의 장비 창고이자 이동 피팅숍이다. 서랍엔 드라이버, 아이언, 웨지 헤드와 샤프트, 그립 등이 빼곡히 들어 있다.

내부는 레스토랑의 분주한 주방 같다. 작업대 위에는 첨단 피팅 장비와 선수별 스펙과 선호도가 정리된 두툼한 가이드가 놓여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피터들이 그 자료를 보며 클럽을 조립한다.

웨지와 퍼터 작업 공간이 가장 넓다. 선수들이 그루브의 날카로움, 바운스 각도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어떤 선수는 로브 웨지를 2주마다 교체하고, 어떤 선수는 코스 컨디션이나 그린 스피드에 따라 퍼터를 바꾼다.

투어밴엔 각 선수의 백업 웨지가 준비되어 있고, 라운드 도중 충격으로 변할 수 있는 로프트 각도를 일일이 점검한다. 트럭 한켠에는 선수들의 라커도 있다. 모자, 장갑 같은 소모품이 채워져 있고 선수들은 필요한 만큼 챙겨간다.

투어 밴은 매년 35~40개 대회를 따라다닌다. 대형 트럭이 가기 어려운 하와이 대회만은 건너뛰는데, 그때는 최소 물량만 항공편으로 보내 급한 불만 끈다. 투어밴의 활동 무대는 PGA 투어가 중심이지만, 메이저 대회 위주로 LPGA 투어에도 4~5차례, 아마추어 대회도 간혹 찾아간다.

트럭이 대회장에 도착하는 건 일요일이다. 세팅을 마치고 월요일부터 선수들을 맞는다. 화요일이 가장 분주하다. 수요일 오후가 되면 다음 대회를 향해 떠난다.

브랜드별로 운영 방식도 다르다. 선수 규모가 가장 큰 타이틀리스트는 미국 동부와 서부에 각각 한 대씩, 두 대의 투어 밴을 굴린다. 계약 선수가 적은 PXG나 윌슨도 트럭을 운영한다. 효율에 비해 비용이 큰 것 같지만, 경기장에 세워둔 것만으로도 ‘움직이는 광고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미즈노는 트럭 일부를 VIP 접대 공간으로 꾸며 비즈니스 파트너를 초청하기도 한다.

가장 큰 트럭은 캘러웨이 투어 밴이다. 길이 14m, 무게 29톤이다. 트랜스포머처럼 주차 후 차를 확장하는데 폭은 5m로 넓어지고 2층으로 변신한다. 내부에는 라운지 2곳, 컨퍼런스룸, 커피바와 스낵바까지 갖춰져 선수들의 휴식 공간 역할도 한다.

캘러웨이에서 투어밴을 총괄하는 투어 디렉터 조 툴롱은 “전시 효과가 뛰어나 다른 브랜드보다 눈에 잘 띈다. 회사 행사에 세워두기만 해도 엄청난 광고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자동차 경주의 F1 피트가 ‘이동식 초정밀 공장’이라면, 골프의 투어 밴은 ‘선수들의 무기고’라 할 만하다. 툴롱은 “기존 로프트 측정 장비는 재는 사람에 따라 오차가 생기지만, 이곳에서는 디지털로 1000분의 1도까지 측정이 가능하다. 단 1m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골프에서 이는 곧 경쟁력”이라고 했다.

캘러웨이 트럭에는 정밀 퍼팅 분석 시스템 ‘퀸틱’과 8km가 넘는 전기·데이터 케이블, 자체 보안 네트워크, 그리고 선수별 성과 분석 프로그램까지 갖춰져 있다.

F1 피트의 엔지니어들처럼 투어밴의 인력들도 최고 기술자다. 자부심도 있지만 긴장도 크다. 툴롱은 2021년 마스터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필 미켈슨의 퍼터 로프트를 잘못 세팅한 적이 있습니다. 미켈슨이 이상하다며 계속 조정을 요청해 만지다 보니 결국 퍼터 인서트에 홈이 생겼고 성적도 좋지 못했죠. 그 일이 있은 후 잠을 못잤습니다. 하지만 다음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에서 미켈슨은 내가 새로 만들어준 퍼터로 우승을 차지했어요. 그제야 마음이 놓이더군요.”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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