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8일 오후 4시12분쯤 부산 수영구 광안동의 한 사거리. 신호를 따라 우회전하던 승용차 1대가 맞은편에서 좌회전하던 차량을 들이받은 뒤, 갑자기 속도를 높여 350m가량 달린 뒤 보도를 덮쳤다. 이 차는 길 위를 지나던 행인 2명을 쳤고 이 중 한 명이 현장에서 숨졌다.
앞서 지난 2월 6일 부산 서구 동아대병원 주차장에선 택시 1대가 앞에 있던 차를 추돌한 뒤, 100m가량 급가속하며 경계석을 들이받아 택시 기사가 숨졌다. 두 사고 모두 운전자는 65세 이상 고령자였고, 1차 사고 후 차량 속도가 갑자기 높아진 끝에 인명사고로 이어졌다.
‘1차 사고 후 급가속’ 부산 고령사고 급증
부산에선 이처럼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를 몰던 중 일어나는 고령 운전자 사고가 가파르게 늘었다. 17일 부산경찰청 집계를 보면 부산에서 발생한 전체 교통사고 중 이런 ‘고령 운전사 사고’ 비율은 2020년 15.2%(1834건)에서 지난해 23.5%(2672건)로 뛰었다. 최근 5년간 매년 약 2%p씩 뛰어 지난해 기준 전체 사고 4건 가운데 1건에 육박했다.

같은 기간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자 수 역시 연간 2471명에서 3710명으로 늘었다. 사망자는 매년 25~28명씩 나왔다. 경찰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인지ㆍ순발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가벼운 1차 접촉 사고 이후 당황해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 페달을 밟는 것으로 추정되는 유형의 사고가 특히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내 경력이 얼만데” 면허 반납 안 해
문제는 부산은 이미 2021년 9월에 초고령 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20% 이상)에 진입했다는 점이다. 지난달 기준 고령자 인구 비율은 24.4%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운전면허를 소지한 이들 숫자는 34만7199명으로, 매년 약 2만명씩 늘고 있다.
이에 부산은 2018년부터 전국 최초로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제도를 시행 중이다.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면허를 반납할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 등 혜택을 주는 제도다. 면허 반납 땐 부산시가 일괄적으로 10만원이 충전된 교통카드를 주고, 16개 자치구 가운데 남ㆍ연제ㆍ해운대구와 기장군 등 자치구 4곳에선 지역화폐 등으로 10만~30만원을 추가 지원한다.

하지만 이런 지원은 일회성에 그친다. 게다가 만 65세 이상은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어 교통카드 혜택은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도 있다. 다수의 고령 운전자가 '운전한 경력이 오래된 만큼 노화로 인한 순발력 감소 등에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면허 반납을 꺼리게 하는 이유로 꼽힌다.
“고령 부모 주시, 경찰에도 도움 요청을”
2023년 3월엔 부산에 사는 A씨(77)의 자녀들이 “아버지가 치매 진단을 받고도 운전을 고집한다. 면허를 반납할 수 있게 해달라”며 경찰에 도움을 청한 일도 있다. 당시 경찰은 여러 차례 A씨를 직접 만나 고령 운전자 사고 영상 등을 보여주며 설득해 A씨 면허를 반납받았다.
이외에도 트럭ㆍ택시 운전 등 운전면허가 생계와 직결되거나, 고령일수록 병원 진료 등 운전이 필요한 때가 많다는 점도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부산의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률은 지난해 기준 3.2%(전국 평균 2.2%) 수준에 그친다.

경찰 관계자는 “현실적 보상이 강화된다면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자녀들은 운전하는 고령 부모의 접촉 사고가 부쩍 잦아진다면 곧 큰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려울 경우 경찰에 연락하면 A씨 사례 같은 도움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