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휴가 중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케데헌(K-POP 데몬 헌터스)'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접했다. 처음 접한 제목만으로는 음악콘텐츠인지 괴기물인지 알 수 없어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금세 작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어 케데헌을 제작한 메기 강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서 확신이 들었다. 케데헌은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창조적 파괴'의 결정판이었다.
창조적 파괴로 유명한 슘폐터는 “기존 정보·지식의 새로운 재조합이 혁신”이라고 했다. 한편, 만류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더 넒은 세상을 바라보라”면서, 자신의 연구결과는 기존 연구자들의 노력과 협력 위에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뉴튼의 말은 기존 연구개발(R&D) 성과 활용과 연구자들 간 혁신분업이 중요하다는 근거로 인용됐다. 이런 이론은 기존 바이오기술 개발과 혁신분업,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혁신에 대한 설명과 시사점을 제공해 왔다.
케데헌을 제작한 강 감독은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캐나다로 이주한 교포다. 케데헌 제작에 참여한 제작진 다수가 한국문화에 익숙한 사람들로 구성됐다. 그와 제작진이 유년 시절 체득한 한국 전통문화의 정서를 K-POP의 역동성과 결합해 탄생한 것이 케데헌이다.
제작진은 치밀한 조사와 재해석을 통해 가장 한국적인 것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풀어냈다. 그런데, 강 감독이 속한 일본기업 소니 픽처스는 새로운 콘텐츠의 실패위험을 회피해 투자를 포기하고, 판권을 넷플릭스에 넘겼다. 이 덕분에, 케데헌은 '넷플릭스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설 기회를 얻었다. 이런 산통을 겪어 케데헌은 탄생했고, 이제 전세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게 됐다. 이 조합이 바로 창조적 파괴의 생생한 사례다.
넷플릭스는 국내에서도 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오징어게임'과 같은 흥행작의 막대한 수익을 더 공유해야 한다는 이슈는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투자하는 콘텐츠가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하며, 이에 대한 보상으로 지재권을 확보하기도 한다. 이는 그 자체로 창의적 시도와 혁신을 촉진하는 시장의 메커니즘이다. 정부가 이런 과정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면 자유시장 원리가 훼손되고, 도전적 혁신이 위축될 위험이 크다.
케데헌의 경우 해외에서 제작됐기에 추가 이익배분 논란은 애초에 없다. 오히려 작품 속 한국 전통문화, 장소, 음악, 캐릭터가 세계인의 눈에 매력적인 수출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는 단순한 오락물 소비를 넘어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영향력을 입증하는 계기가 된다. 무엇보다 중국자본이 개입된 과거 일부 콘텐츠에서 불편하게 삽입되던 상업광고나 문화적 강요와 달리, 넷플릭스는 케데헌을 한국문화 기반 콘텐츠로 태어나게 투자했다고 평가받는다.
창조적 파괴가 전통과 현대, 지역과 세계, 위험과 기회가 교차하는 콘텐츠산업 현장에서 구현되고 있다. 강 감독과 제작진에 힘입어 한국 전통문화와 K-POP의 재조합으로 탄생한 케데헌이 한국콘텐츠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케데헌이 보여준 도전과 결실은 한국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분명한 시사점을 준다. 우리는 창의적 실험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토양을 가꾸고, 우리 인재들에게 거인의 어깨 위에서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용기를 갖도록 지원해야 한다.
강 감독은 “케데헌을 한국에 주는 선물”이라고 한다. 그 이상이다. 강 감독과 제작진이 만들어낸 이 성과는 대한민국의 미래 세대에 넘겨줄 또 하나의 '혁신 자산'이다. 나는 감격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윤지웅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 jiwoongy@stepi.re.kr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