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본 한국의 모습

2025-01-13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엘리자베스 키스.

1919년 처음 한국을 찾은 뒤 한국의 여러 가지 풍속과 사람을 그린 화가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근무하는 언니 부부를 따라 일본에 왔다가 동양에 매혹되어 머물렀다. 그 뒤 언니 제시와 함께 1919년 3월 28일, 조선에 와서 한국의 다양한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이렇게 그린 그림을 1946년 《올드 코리아》라는 책으로 펴냈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은 색동옷을 입고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 좁은 방에 마주 앉아 학문을 논하는 노인들, 추운 겨울바람을 막아주는 남바위 등 1900년대 초 한국의 모습을 따뜻하면서도 정교하게 담아내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배유안이 쓴 이 책,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에서 우리 문화 찾기》를 보면 경성시대 한국의 모습이 한층 정겹게 느껴진다. 물론 식민지배 치하의 엄혹한 시대, 사는 것이 신산하다고 고달팠을 테지만 그럼에도 일상은 무심히 흘러갔던 것 같다.

책에 실린 그림들은 ‘정겨운 사람들’, ‘마음에 남는 풍속들’, ‘아름다운 사람들’, ‘기억하고 싶은 풍경들’의 네 가지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어떤 모습을 그리든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을 담았다.

그 가운데 독립운동가의 아내를 그린 작품이 눈길을 끈다. ‘과부(The Widow)’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머릿수건을 쓴 정갈한 모습의 여인을 그렸다. 슬퍼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결연한 마음가짐이 드러나는, 복합적인 표정이 인상적이다.

(p.241)

이 사람은 일본 경찰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풀려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몸에는 아직도 고문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표정은 평온했고 원한에 찬 모습은 아니었다.

타고난 기품과 아름다움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남편이 죽었지만 마냥 슬퍼할 처지가 아니었다. 외아들도 일본 경찰에

끌려가 언제 다시 아들을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형편이었다.

남편과 아들은 삼일 운동에 열심히 참여한 애국자였다.

한국의 이름난 명승을 그린 작품도 적지 않다. 특히 금강산 구룡폭포를 그린 작품은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절로 시원한 느낌을 준다. 금강산 구룡폭포는 화강암 아래로 떨어지는 거대한 폭포로 금강산 4대 폭포 가운데 하나다.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고 해서 ‘구룡폭포’라는 이름이 붙은 배경을 보여주듯, 엘리자베스 키스는 아홉 마리의 용을 그려 넣어 해학을 더했다. 옛날에 가끔 용들이 이곳에 나타나 소동을 피우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인도에서 승려들이 와서 이 용들을 달래서 보냈다는 전설이 있다.

단정한 유학자를 그린 작품에서는 조선 선비와 얼굴을 대한다는 것이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고 회상하면서, 선비의 몸가짐과 인자한 부드러움에 경탄을 보냈다.

(p.118)

이 나이 많은 조선 선비와 얼굴을 대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표정에서 가정 교육을 잘 받아 몸에 익은 인자한 부드러움을

읽을 수가 있었다. 선비의 몸가짐은 은근하면서도 정중했다.

속세의 근심을 떠나 별천지에 사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그림들은 언뜻 평범한 듯하면서도,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과 찬탄이 담겨 있어서인지 비범한 인상을 준다. 함께 남긴 글들을 보면 평범한 대상이라도 자세히 살펴보고 애정을 담아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면 당시 풍습과 사람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1900년대 초반 한국의 모습을 알아가고 싶은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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