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향한 낙인, 이제는 거둬야 할 때

2024-10-04

먼 길을 돌아 10년 만에 다시 자동차업계를 출입하게 됐습니다. 과거에 자동차업계를 출입하던 시절 제게 가장 많이 들어오던 지인들의 질문은 "어떤 차가 제일 괜찮은가"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다릅니다. "전기차는 진짜로 괜찮은가"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습니다.

앞선 질문이 '어느 차를 사야 내가 만족할 수 있겠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후자의 질문은 '전기차는 진짜 탈 만한 자동차가 맞는가'라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진 셈입니다. 여기에는 전기차에 대한 의구심과 공포감이 기저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전기차는 자동차업계가 직면하고 있는 오랜 숙제이자 아픈 손가락입니다. 전기차는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핵심 아이템으로서의 가치가 분명하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해답을 찾지 못한 아이템입니다.

더구나 "이미 전기차를 살만한 사람들은 다 샀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전기차 추가 구매 수요가 쪼그라드는 바람에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신통치 않습니다. 이른바 '캐즘'이라고 부르는 수요 둔화기에 접어들었지요.

설상가상으로 2개월 전 인천 청라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일어난 전기차 화재 사고는 잠재적 전기차 구매 수요를 단숨에 날려버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업계 안팎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전기차,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공포감이 커진 계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전기차 사업을 포기하자니 그동안 집행한 투자 규모가 꽤 크기에 매몰비용의 수준을 고려한다면 섣불리 접을 수 없는 사업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기후 위기와 그에 따른 후폭풍을 생각한다면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은 당연하다는 관측도 적지 않습니다. 시대는 전기차로의 전환을 원하고 있지만 여건이 그렇지 못한 셈이지요.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따져본다면 전기차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주된 동력원이 되는 유류(휘발유·경유)의 가격 흐름은 불안정합니다. 그에 비하면 전기차의 충전요금은 확실히 저렴합니다. 이 부분은 대부분의 소비자가 인정하는 부분이죠.

문제는 안전, 특히 화재에 대한 불안감입니다. 걸핏하면 불이 나고 그 불마저도 쉽게 끌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운전하고 있는 중에 불이 나거나 주차된 차에서 불이 나는 일은 누구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전기차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대책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산·수입차 업체들이 전기차 안전점검 상설화에 앞다퉈 나서고 있고 현대자동차그룹 등 대형 자동차 기업에서는 화재 위험 감소와 화재 시 급속 진화를 위한 대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사후약방문 격이지만 정부에서도 전기차 관련 안전 대책을 내놨습니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대책 내용도 일부 있습니다만 그래도 안전한 전기차 사용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업계와 정부가 수십개의 전기차 안전 대책을 내놔도 정작 전기차를 타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들의 대책은 물론이고 그동안 전기차 산업 발전을 위해 투자했던 모든 이들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제 말이 "무조건 전기차는 안전하니 전기차를 사라"는 뜻은 아니며 "전기차 캐즘의 원인은 소비자의 비뚤어진 인식 때문"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어떤 종류의 자동차를 구매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소비자 각자의 몫이며 일개 기자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닙니다.

다만 전기차를 시한폭탄처럼 낙인찍는 것만큼은 이제 그만 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제 말의 요지입니다. 전기차 캐즘 타파를 위해 업계와 정부가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만큼 전기차에 대한 주홍글씨를 지우고 향후 상황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지켜본 뒤에 전기차를 선택하는 것도 결코 늦지 않다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검증되지 않은 사실에 현혹돼 전기차와 관련한 가짜 뉴스를 퍼뜨리거나 막연한 공포감과 혐오감으로 전기차 소유자와 전기차 생산 업체를 적으로 규정하는 것 역시 '전기차로의 전환'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전기차를 비뚤게만 바라보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이제는 인식을 조금만 달리 해보시는 것이 어떨지요.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만큼이나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전기차를 제대로 만들고 관리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의 수립입니다.

정부는 단순히 완성차 업체들과 충전 사업자들을 향해 겁박하는 수준의 대책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전기차 운전자들이 안심하고 전기차를 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을 내놓는 것에 치중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업계와 정부가 함께 획기적인 충전 시설 확충에 나서줘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편리하고 안전하게 전기를 채울 수 있도록 충전 인프라를 구축해준다면 전기차 소유자들은 물론 잠재적인 구매 희망자들도 충전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일은 덜해질 것입니다.

아울러 각 완성차 업체들도 배터리 업체, 충전 사업자 등과 머리를 맞대고 조금 더 안전하고 활용 가치가 뛰어난 전기차를 만들 수 있도록 묘안을 짜내는 일에 서둘러야 합니다.

시대는 분명 전기차를 원하고 있습니다.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확실한 대비와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런 만큼 이해관계자들 모두의 부단히 노력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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