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김상현·정준호·강성현' 3인 대표 체제 유지
해외사업·타임빌라스·오카도 등 당면 과제 산적
롯데그룹이 최고경영자(CEO) 21명을 교체하는 고강도 인적 쇄신을 단행한 가운데 유통군 부회장과 롯데백화점, 롯데마트·슈퍼 등 주요 유통 계열사 CEO는 자리를 지켰다.
롯데는 지난달 말 롯데지주 포함해 37개 계열사 이사회를 열고 2025년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롯데는 이번 인사에서 그룹 CEO 중 21명(36%)를 교체하고 전체 임원의 22%를 퇴임하는 등 역대 최대 규모의 고강도 인사를 실시했다.
롯데가 대대적인 인적 쇄신에 나선 것은 최근 롯데그룹 위기설로 촉발된 어수선한 분위기를 다잡고 경영 체질을 본질적으로 혁신해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롯데는 지난달 16일 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담은 지라시(정보지)가 퍼지면서 주가가 흔들리는 등 홍역을 앓았다. 이후에도 시장의 불안심리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자 지난달 27일에는 2조원 규모의 롯데케미칼의 회사채에 6조원 이상 가치를 지닌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은행권 보증을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이튿날에는 대폭 물갈이 인사와 함께 기관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를 진행하는 등 투자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그룹 차원의 강도 높은 물갈이 인사 태풍 속에서도 롯데그룹의 양대 중 하나인 유통군 수장들은 자리를 지켰다. 현재 유통 부문은 롯데쇼핑 김상현 부회장을 필두로 롯데백화점 정준호 대표, 롯데마트·슈퍼 강성현 롯데마트·슈퍼 대표 3인 체제로 이뤄져있다. 업계에서는 백화점과 마트가 모두 사업 체질 개선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경영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현 체제를 유지한 것이란 분석이다.
롯데쇼핑 김상현 부회장은 3년 전 비(非)롯데 출신 최초로 유통사업 총괄대표에 오른 인물로, 한국 P&G 대표, 동남아시아 총괄사장, 미국P&G 신규사업 부사장을 역임한 글로벌 유통 전문가이다.
김 부회장 앞에 산적한 과제는 적지 않다. 우선 롯데쇼핑이 지난해 9월 베트남 하노이에 오픈한 복합쇼핑몰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를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켜야한다.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는 사업비만 8,500억원이 투입된 롯데그룹의 초대형 프로젝트이다.
초반 반응은 긍정적이다.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는 올해 1월 개점 122일만에 매출 1,000억원을 달성했고 6월에는 2,000억원도 넘어섰다. 연말 기준 누적 매출이 3,000억원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다.
영국 유통기술 기업 오카도(Ocado)와 협업을 통한 성과도 이끌어내야한다. 롯데는 온라인 식료품 시장 1번지로 도약하기 위해 오카도와의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2032년까지 6개의 혁신적인 자동화 물류센터(CFC: Customer Fulfillment Center)를 구축하고 있다. 첫 번째 CFC는 2026년 부산에 문을 연다. 롯데는 6개 센터가 모두 가동되는 2032년에는 국내 온라인 그로서리 시장에 연간 5조원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사상 첫 외부인 출신 사장인 정준호 대표의 어깨도 무겁다. 정 대표는 롯데백화점의 새로운 쇼핑몰 브랜드 '타임빌라스'를 통해 체질 개선을 진행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2030년까지 7조원을 투자해 타임빌라스를 13개까지 늘려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쇼핑몰의 비중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롯데마트와 슈퍼의 통합을 추진했던 롯데마트·슈퍼 강성현 대표는 그룹 내 온오프라인 그로서리사업 전체를 이끌어야한다. 롯데쇼핑은 올해 10월 이커머스(전자상거래)사업부 내 e그로서리(식료품)사업단 조직을 롯데마트·슈퍼의 해당 사업부와 통합하기로 했다. 그동안 롯데쇼핑의 그로서리 사업은 롯데마트·슈퍼 사업부가 마트 슈퍼 등 오프라인 채널을, 이커머스사업부가 온라인 채널인 롯데마트몰을 각각 맡아왔다. 이커머스에서 담당하던 오카도와의 협업도 롯데마트가 추진하게 된다.
여기에 백화점과 마트·슈퍼의 경우 롯데쇼핑의 핵심 사업부인 만큼 단기적인 성과를 내야한다는 부담도 크다. 올해 3분기 기준 롯데쇼핑의 매출은 3조5,68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9.1% 증가한 1,550억원을 기록했지만 백화점과 마트, 슈퍼는 점포 재단장에 따른 일회성 비용 증가, 고물가로 인한 소비 위축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뒷걸음질쳤다.
3분기 롯데쇼핑이 백화점 부문에서 거둬들인 매출은 7,553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0.8%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707억원으로 8.0% 줄었다. 마트와 슈퍼 매출은 각각 1조4,421억원과 3,345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각각 4.9%, 3.6%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451억원, 123억원으로 각각 11.6%, 11.0% 감소했다.
다만 연말을 맞아 집객이 활성화하고 그동안 추진해온 수익성 개선 노력이 실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승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백화점의 경우 11월부터 실적 회복세를 보이며 4분기부터 전체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마트와 슈퍼는 신선식품 중심의 매출 증가와 그로서리 3.0 리뉴얼 효과로 3분기 대비 개선된 실적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사업은 베트남 시장 확장과 인도네시아 사업 구조 개선을 통해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며, 올해 10월 1일부터 롯데마트에서 통합 운영되는 오카도 사업은 온·오프라인 그로서리 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며 롯데쇼핑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