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을사년 한 해가 쓸쓸히 저물어가고 있다. 새해 첫날을 맞이하고 해돋이를 보러 간 게 엊그제 같은데 무심한 시간은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만이 외롭게 을사년을 지키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요즘이 제일 바쁜 때인 것 같다.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서 김장 나눔, 연탄 봉사, 쌀 나눔 행사 등이 이어지고 있고 각종 송년회와 정년을 맞이한 선배들의 퇴임식 등 행사도 많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일터도 만 56세에 비자발적 명예퇴직이 이루어지고 있어 올해도 전국적으로 700여 명의 베이비 붐 세대가 명예퇴직을 해야 하는 형편이다. 말은 ‘명예퇴직’이지만 사실 이들은 30여 년을 몸바쳐 일한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법상 정년이 60세임에도 터무니없는 저임금의 임금피크직을 선택할 수 없기에 금융노조 산하의 1금융권 은행들은 거의 모두 만 56세 강제 명퇴가 룰이 되었다.
이른바 ‘베이비 붐’ 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퇴직 후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아갈까. 한국에서의 베이비 붐 세대란 주로 1955년생에서 1974년생까지를 일컫는데 1차 베이비 붐 세대(1955년생 ~ 1963년생)와 2차 베이비 붐 세대(1964년생 ~ 1974년생)로 분류된다. 이들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도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 다녀야 했고 한 반에 70명씩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교탁 바로 아래까지 책걸상을 놓고 수업을 받아야 했다. ’24년 합계출산율이 가임여성 1명당 0.748명이라 하니 가히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일 것이다.
이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학교에 들어가고 직장에 들어갔지만 떠나는 뒷모습은 쓸쓸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불안한 미래일 것이다. 이른바 “낀 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위로는 부모를 모셔야 하고 아래로는 아이들을 품어야 한다. 요즘은 요양병원에도 많이 모시기는 하지만 결코 부모 모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세대다. 게다가 아이들은 캥거루족이 되어 이들의 곁에서 빌붙어 산다.
이 사회가 우리의 자녀들이 원하는 일자리와 주거를 다 제공하지 못하고 사교육비의 함정 속에 결혼이나 출산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 큰 자식이 출가를 하지 않으니 이에 대한 부양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만 56세에 퇴직해도 어떤 일인가는 해야 먹고살 수 있다. 일시금으로 주는 퇴직금과 명퇴금으로 국민연금 수급 연령인 만 65세 이전까지 버텨야 하고 국민연금도 생각보다 넉넉지는 않기에 일을 하지 않고는 배겨나기 힘든 구조다. 게다가 기대 수명까지 늘어 퇴직 후 적어도 30년 이상은 살아야 하니 노후 자금에 대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이 정부에 빠른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것은 이런 시대적 과제와 이유 때문이다. 이미 법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금융기관의 일자리도 문제다. 박근혜 정부 시절 강압적인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오히려 정년이 앞당겨진 꼴이다. 4년 임금피크제 기간 동안 평균 50%의 급여만 주니 명퇴금 받고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군들 30년 넘게 뼈 빠지게 일했으니 이제는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을 왜 안 하겠는가. 하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오히려 노동자들이 정년 연장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에겐 기대수명이 늘어난 만큼 인생을 즐기고 놀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정년 연장에 대해서 몇 년째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적자가 60억 유로를 넘는 상황에서 연금 개혁과 정년 연장은 그들에게도 피해 갈 수 없는 과제가 될 수 있다.
정년 연장의 문제를 두고 여러 가지 말들이 많다. 기업에서는 일단 퇴직을 시키고 재채용하는 구조를 원하고고 있지만, 임금이 줄어드는 정년 연장이라면, 그것은 연장이 아니라 ‘전환’이다. 임금 삭감이 경영부담 완화라는 명분 아래 노동자의 생계 부담으로 전가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정년 연장이 거론될 때마다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말들을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언뜻 보면 연관이 있는 것 같지만 두 가지 문제는 다른 각도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현대를 사는 청년들은 과거처럼 30년씩 정년까지 일하려 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하고 남의 간섭을 받기도 싫어한다. 직업의 다양성이 더 커져 가고 있지만 양질의 청년 일자리는 반드시 더 늘려가야 한다. 그래야 출산율도 늘어나고 내수도 늘어나지 않겠는가.
박병철 <전북농협 노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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