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257) 박찬순 시인의 ‘선녀와 나무꾼’

2025-09-07

‘선녀와 나무꾼’

- 박찬순 시인

얼마를 왔던가

밥술이나 먹던 숲에서 배고픈 숲까지 왔다

선녀탕을 기웃거리며 날개옷을 찾아다녔다

얼마쯤이었을까

밤마다 사람 찾는 현상공모 광고지처럼 꿈에 나부끼던 날개옷을 보았다

꽁지 뽑기 하듯 아무 날개옷을 집어 들고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다

그러다가 아뿔싸 나뭇가지에 걸려 날개옷이 찢어지고 말았다.

선녀는 하늘로 가지 못한 채 인어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나무꾼은 빈손으로 돌아올밖에

<해설>

우리가 잘 아는 전통 설화 「선녀와 나무꾼」을 희화한 시입니다. 선녀(배우자)를 찾기 위해 “얼마를 왔던가/ 밥술이나 먹던 숲에서 배고픈 숲까지 왔다”는 반려자를 찾기 위해 오랜 세월 사방을 찾아다녔다는 뜻입니다.

시적 자아는 날개옷을 찾기 위해 선녀탕을 기웃거립니다. 마침내 시인은 “밤마다 사람 찾는 현상공모 광고지처럼 꿈에 나부끼던 날개옷”을 행운처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 날개옷이나 꽁지를 뽑듯 집어 들고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납니다. 날개옷의 주인 선녀가 뒤쫓아 오기를 기대하면서 달렸지만 뜻밖의 일이 일어납니다. 아뿔싸! 날개옷이 그만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지고 맙니다.

결국 선녀도 구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오고, 훗날 바람 같은 소문으로 “선녀는 하늘로 가지 못한 채 인어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 소식은 오리무중에 빠집니다.

시인은 충청도 특유의 화법으로, 시를 해학과 풍자로 재미있게 풀어갑니다. 그렇지만 시의 행간에는 자전적인 슬픈 사연이 숨었습니다.

시인은 어려서 의료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고, 이런 이유로 60여 년을 살면서 오랜 세월 ‘선녀’를 찾았지만 끝내 찾지 못한 채 과로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시는 그의 마지막 시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강민숙 <시인,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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