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의성군에서 발생해 북동부 5개 시군으로 확산했던 역대 최악의 산불이 발화 149시간여 만에 진화됐다. 이번 산불이 역대 최대 피해로 이어진 것을 두고 진화 차량 진입에 필수적인 임산도로가 턱없이 부족하고 기름기 많은 침엽수림의 비중이 높았던 것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생태계 보호도 중요하지만 괴물 산불이 한번 발생하면 더 큰 환경 파괴로 이어지는 만큼 임도를 전향적으로 확충하고 침엽수 대신 활엽수로 수종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8일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경북은 심각한 임도 부족 지역”이라며 “(임도 부족으로) 진화 차량을 충분히 투입하지 못했던 게 이번 사태의 핵심 원인 중 하나”라고 짚었다. 실제 경상북도산림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경북 전체 평균 임도 밀도는 2.84m/㏊로 전년 대비 전국 평균인 4.1m/㏊의 70% 수준에 그쳤다. 이번 산불 피해가 컸던 안동(2.14m/㏊), 의성(2.37m/㏊), 청송(2.40m/㏊)은 경북 평균도 하회했다.

임도는 숲속에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조성된 도로다. 평소에도 임산물 운반 등에 활용되지만 산불 발생 시 진화 작업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임도만 있으면 진화 차량과 인력이 언제든 화재 현장에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임도가 없어 헬기만 동원할 경우 날씨가 좋지 않거나 해가 저문 후에는 진화 작업을 이어가기 어렵다. 실제 이번 울산 울주군 산불에서 임도 설치 여부에 따라 희비가 극명하게 갈렸다. 임도가 정상까지 개설된 언양읍 화장산 산불은 발생 20시간 만에 진화됐지만 임도 개설이 미미한 온양읍 대운산 산불은 잡는 데 5일 이상 걸렸다.
산림청 역시 임도 확충을 주요 정책 과제로 적극 추진하고 있다. 산림청은 2021년 발표한 ‘제5차 전국임도기본계획’에서 당시 3.5m/㏊에 불과했던 임도 밀도를 2030년까지 5.5m/㏊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임도 밀도는 4.1m/㏊에 불과해 여전히 미국(9.5m/㏊), 일본(24.1m/㏊), 독일(54m/㏊) 등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임도 확대가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로는 환경단체의 반발이 꼽힌다. 임도가 산사태 등 다른 자연재해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법적인 문제도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임도 설치 시 반드시 산림 소유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사유림 비중이 전체의 70%에 달하는 데다 하나의 산에도 여러 명의 산주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합의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임도 설치로 인한 실보다 득이 많다며 확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단 산에 가서 불을 꺼야 하는 입장에서는 현장에 다다를 수 있는 경로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임도는 꼭 필요하다”며 “단순히 ‘임도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가 아니라 ‘산불 확산을 막는 주요 길목에 설치한다’는 식으로 절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강완모 국민대 산림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임도가 없어서 산불이 광범위하게 확산된다면 생태계가 오히려 파괴되는 만큼 예방 차원에서 임도 확충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소나무를 비롯한 침엽수림의 비중이 너무 높다는 것도 산불이 삽시간에 번진 이유로 꼽힌다. 2023년 기준 침엽수는 우리나라 전체 임야 면적의 36.9%지만 의성에서는 51.7%, 안동에선 53.4%에 달했다. 침엽수의 대표 격인 소나무는 송진 휘발성 기름인 ‘테레핀’ 성분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양의 연소 물량이 타더라도 소나무가 활엽수의 한 종류인 참나무보다 1.5배가량 열량이 더 많이 나온다. 또한 소나무는 한번 화재가 발생해 복사열을 강하게 받으면 발열량과 열방출률이 다른 나무들에 비해 2배나 빠르게 최대값으로 치솟는다.
소나무를 땔감 삼아 불길이 치솟는 상황에서 산불진화대 역시 힘을 쓰지 못했다. 이들의 평균연령이 65세를 훌쩍 넘는 데다가 현장 경험도 전무해 산불 앞에 무력하다는 지적이다. 황정석 산불방지정책연구소장은 “9600여 명의 산불진화대를 통솔하고 교육하는 산림공무원들은 순환보직을 통해 한시적으로 업무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현장 경험이 전무하다”며 “전문교육을 위해 강사를 초청한다 해도 99%가 퇴직 산림공무원 출신 강사인 데다 실습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장기적으로는 화재에 강한 숲을 만들면서 진화 인력의 연령대도 대폭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화수림대 조성을 통해 침엽수림 비중을 낮추면 화재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진단이다. 진화 인력의 경우 현재의 산불진화대 대신 의용소방대를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 나온다. 황 소장은 “의용소방대의 경우 9만 명 이상의 인력을 갖추고 있는 데다 연령도 평균이 아닌 정년이 65세일 정도로 젊은 조직”이라며 “또한 1년에 1~2회 소방학교로 가 현직 소방관에게 진압 훈련을 받고 있기 때문에 산불이 발생하면 의용소방대를 긴급 수집해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