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그린 '희망', 벽화로 꽃 피웠다

2024-09-25

아리아리21·신포니·NYCC 등

한인 학생 60명 벽화 프로젝트

매주 5시간 홈리스 셸터서 작업

14일 제막식…시정부 공로 치하

차갑고 거친 콘크리트 벽 위에서 피어난 꽃은 온 도시를 밝혔다. 꽃과 함께 흐르는 선율은 노숙자들의 마음을 보듬었다.

지난 14일 LA 근교 작은 도시 벨에 있는 ‘벨 베테랑스 홈리스 셸터(이하 벨 쉘터)’에서는 작은 음악회와 함께 건물 외벽에 그려진 벽화가 공개됐다.

작품 제목은 ‘희망(HOPE)’이다. 삭막한 도심 속에서 예수의 손길로 꽃피운 희망을 표현한 기독교적 가치관이 담겼다.

이 작품은 한인 중고등학생 60명이 힘을 모아 그린 것으로, 작업 기간만 1년 넘게 걸렸다. 100피트 길이의 2층 높이 건물 외벽은 학생들의 캔버스였다. 땀이 온몸을 적시는 한여름 폭염 속에서도 학생들은 붓을 놓지 않았다. 전문가의 도움 없이 한 땀 한 땀 묵묵히 그렸다. ‘희망’을 꼭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는 지난 2021년부터 시작됐다. LA지역 한인 청소년 미술 봉사단체 아리아리21(Ariari21)을 비롯한 음악 봉사단체 ‘신포니에타 오케스트라(지휘자 김용재)’, 청소년 봉사단체 ‘NYCC (National Youth Community Center)’ 등 3개 단체에 소속된 학생들이 공동으로 진행중이다.

아리아리21의 학생들은 벽화를 그리고, 신포니에타 오케스트라의 학생들은 홈리스들에게 음악치료와 악기 수업을 제공한다. NYCC는 프로젝트의 세부 계획, 스케줄 등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NYCC의 줄리아 정 대표는 “매주 일요일마다 학생들이 셸터로 가서 5시간씩 봉사했다”며 “홈리스들이 그간 기부품 등을 통해 도움은 받았지만 학생들처럼 직접 시간을 함께 보내고 위로해 준 것은 처음이라며 진심으로 고마워했다”고 말했다.

벨 셸터는 전쟁에서 생긴 트라우마로 정신질환 혹은 마약, 알코올 중독을 앓고 홈리스가 된 참전용사들을 위한 시설이다. 일반 홈리스도 살고 있다.

공장처럼 생긴 삭막한 외관에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모였던 이곳은 한인 학생들의 프로젝트로 다시 생기가 돌고 있다. 일부 홈리스들은 이번 벽화 작업에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아리아리21 홍이나 대표는 “어떤 홈리스는 과거에 예술을 전공했는데, 우리에게 ‘너희 그림 때문에 행복하다’며 ‘다시 도전할 용기가 생긴다’고 말했다”며 “땡볕에 녹초가 되면서도 학생들이 페인트칠을 멈추지 않았던 원동력은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줄리 석(12학년·매리마운트 고등학교) 학생은 “예술에 대한 열정을 지역사회에서 환원하고 싶었다”며 “어려운 상황이 자신만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덜 두렵게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벽화는 이들의 네 번째 작품이다. LA 한인타운에 있는 ‘구세군 실버 크레스트 노인아파트(The Salvation Army LA Silvercrest Senior Housing)’에서 건물 내부 작업을 시작으로, 외부 가든 프로젝트까지 벌써 두 개의 벽화를 제작했다.

또, 지난 2022년 9월에 시작한 벨 셸터 내부 1층 복도에 그린 벽화인 ‘등대’에 이어 이번 외관 벽화 ‘희망’까지 완성했다. 그때마다 신포니에타 오케스트라 학생들이 함께 음악으로 위로와 격려를 더했다.

이 프로젝트는 시정부의 관심까지 끌었다. 지난 14일 벽화 ‘희망’ 제막식 당시 벨 시의 알리 살레 시장과 모니카 아로요 부시장도 참석해 한인 학생들의 공로를 치하했다. 방치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벨 셸터에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NYCC 정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로 벨 시정부에서도 이 셸터를 주목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며 “학생들의 작은 노력이 모여 시정부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온기가 스민 꽃은 비록 더디게 자랐지만, 온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장수아 기자 jang.suah@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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