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 저 멀리 내가 탈 버스가 다가오고 있다. 카드 지갑을 꺼내 가슴 옆에 반듯하게 들고 버스 기사님에게 눈을 맞춘다. 버스가 다가온다. 시선을 놓지 않고 집중한다. 버스가 속도를 줄이며 정확히 내 앞에 선다.
“치익” 소리를 내며 버스의 문이 열린다. 내 옆에 서 있던 아저씨가 발을 먼저 들이민다. 새치기는 안 되지! 팔을 뻗어 버스 문 옆에 있는 손잡이를 잡으며 아저씨를 차단한다. 서울 생활 10여년, 이 정도 생존력은 갖추고 있다.
“안녕하세요~.”
삑-. 카드를 찍는다. 정확히 내 앞에 버스 세우기, 오늘도 성공이다. 몇년 전부터 혼자 즐기는 놀이다. 카드를 잘 보이게 가슴 앞이나 얼굴 옆으로 들고, 기사님에게 정확하게 눈을 맞춘다. 그러면 열의 아홉은 버스가 정확히 내 앞에 선다. 어떻게 이렇게 정확히 설 수 있는지 감탄스러울 정도다. (단 노약자가 있으면 그분 앞에 버스가 선다) 타면 기사님께 내면의 따봉을 날리며 인사를 한다. 별것 아닌데 기분이 좋다.
어디에 앉을까. 빠르게 버스 안을 스캔한다. 서울버스는 뒷문을 기준으로 앞쪽은 한 칸, 뒤쪽은 두 칸이다. 어차피 앞쪽은 교통약자석이라 뒤쪽으로 간다. 2칸 모두 비어있어 타인 옆에 앉지 않아도 되는 좌석이 최우선이다. 이건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라 뒤 칸은 한 명씩 채워진 후에야 다른 사람 옆에도 사람이 앉는다.
오늘은 바퀴 위에 앉았다. 남들은 불편하다고 잘 안 앉지만, 키가 작은 나에겐 괜찮은 자리다. 바퀴 위에 올라가야 해서 탈 때는 번거롭지만, 앉아 있으면 은근히 편하다. 사실 이 바퀴석 바로 뒷자리가 최고의 상석이지만 이미 사람이 앉아 있어 패스한다.
출입문 바로 뒤에 있는 좌석도 인기가 많다. 손만 내밀면 교통카드를 찍을 수 있고 내리기 쉽다. 하지만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춥거나 덥다는 단점도 있다. 그리고 교통카드 기계 위에 달린 손소독제가 정확히 내 눈 위치에 있어, 누군가 손소독제를 짜다가 내 눈에 발사될 것 같아 두렵다. (다행히 사람들이 잘 안 쓴다)
“손잡이 잡으세요.”
기사님이 차내 방송을 한다. 보니 서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 손잡이도 안 잡고 휴대폰을 보고 있다. 요즘 흔한 모습이다.
이게 다 버스가 안전해져서 그런 거다. 옛날 버스는 감히 손잡이 안 잡을 생각도 못했다. 부웅~(급가속), 부아아아앙(속도 올림), 끼익!(급정거) 으악!(승객 전체 휘청) 손잡이를 목숨줄같이 붙들고 있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했다. 그러다 넘어져도 손잡이 잘 잡지 그랬느냐고 혼만 났다.
승객만 혼나는 게 아니었다. 끼어드는 차가 있으면 기사님의 쌍욕이 날아갔다. 나한테 하는 건 아니지만 좀 무섭다.(물론 괜히 성을 내는 것은 아니다. 버스는 많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에 도로에서 당연히 최우선이다) 가끔 성질 나쁜 운전자들은 차에서 내려 버스 문을 걷어차며 당장 문 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기사님도 지지 않고 능수능란한 욕설로 맞받아쳤다. 우리 팀 이겨라! 승객들도 기사님의 편을 들며 성질 나쁜 운전자에게 야유를 보냈다. 지금 당신만 운전해? 어딜 민폐야, 이 양반이! 결국엔 머릿수를 당해내지 못하고 항상 버스가 이겼다. 지금 생각하니 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는 서울이었다.
녹초가 된 몸 이끌고
터덜터덜 오른 버스
차창 밖 흐르는 풍경
일상의 소음과 섞인
감미로운 풀치넬라
‘삶은 꽤 풍성하잖아’
승객은 관객이 되고
피로는 어느새 사라져
아…내리기 아쉽다
버스만 그랬나? 승객들도 야만 그 자체였다. 신촌에서 마을버스란 걸 처음 탔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분명 줄 비슷한 게 있는 것 같았는데 버스가 오자 모두가 몰려들어 난장판이 됐다. 버스는 앞으로 타고 뒤에서 내리는 게 당연한데 이 사람들이 뒷문으로 막 탔다. 이게 말이 돼? 세상의 규칙이 모두 무너진 줄 알았다. 야만인들! 법도 질서도 없는 서울놈들! 나도 질 수 없다. 고등학교 때 매점 달리기하던 실력으로 사람들을 팔로 밀치고 제쳐냈다. 1등! 그때의 승리감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래도 요즘은 버스가 부드러워진 만큼 승객들도 점잖아져 이런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다.(물론 중간에 승객이 기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다수 발생하고 운전석에 안전벽과 CCTV가 생기는 과정을 거쳤다)
밖으로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 버스는 역시 이게 좋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풍경이 바뀌다니! 지하철은 밖을 볼 수 없어 지하에 갇힌 느낌인데, 버스는 답답하지 않다.
버스 없이 서울에서 어떻게 살까? 지하철이 큰 강이라면 버스는 작은 물줄기다. 지하철이 닿지 못하는 곳을 버스가 구석구석 이어준다. 한참이나 등산해야 하는 언덕길도 버스가 대신 올라가준다. 나 같은 사람들은 아마 버스 없이는 서울에서 살 수 없었을 거다.
이런 버스가 하루 운행을 중단한 적이 있었다. 2024년 3월28일 버스 파업 때다. 버스노조는 사측과 임금 협상 중 “돈 몇만원 갖고 벌벌 떠는 너희가 파업할 수 있겠어? 할 테면 해봐라”라는 모욕을 당한다. 이에 서울시버스노조는 파업 성명문을 발표한다. 그 성명문 중 다음 구절이 많은 시민의 마음을 울렸다.
“도대체 왜, 서울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고귀한 노동을 하는 우리가 이따위 개똥 취급을 받아야 합니까.”
‘삶을 지탱하는 고귀한 노동’이란 말을 봤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맞다. 나의 삶은 버스가 이어주고 있다. 내 인생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도 정해진 약속에 따라 나를 태워주고, 목적지에 내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도 나는 버스 운전기사를 개개인의 인격체로 본 적이 없었다. ‘버스 기사’로 뭉뚱그려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매일 내가 타는 버스의 기사님 얼굴을 본 적이 있나? 없다. 버스를 내 앞에 세우기 위해 열심히 눈을 맞췄지만,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 단 한 명, 기억나는 분이 있다. 우리 동네를 지나는 초록 버스(지선버스)를 운행하는 기사님이다. 이분은 차 안에 늘 클래식 FM을 튼다. 버스에서 테너 마틴 힐이 부르는 스트라빈스키의 풀치넬라를 들어보신 분?(왼쪽 QR을 찍어보세요) 그 기분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갑자기 나를 둘러싼 공기가 바뀐다.
분명 녹초가 되어 기운 빠진 상태로 터덜터덜 버스를 탔는데 말이다. 버스가 터널로 들어가자 소리가 더 집중된다. 여기가 어디지? 콘서트장인가? 갑자기 오늘 피로가 다 사라진다. 일상적인 소음과 버스가 움직이는 소리에 가곡이 더해지자, 이 순간 삶이 풍성하게 느껴진다.
그 후로 나는 ‘클래식 기사님’을 만나기를 은근히 기다리게 되었다. 초록버스를 탈 때마다 ‘이분인가?’ 하며 얼굴을 봤다. 클래식이 나오면 그분이 맞는 거고, 안 나오면 그분이 아닌 거다. 그렇게 관찰하다 보니 몇분의 얼굴이 익숙해졌다.
그러다 어느 날 저녁에 우연히 클래식 기사님을 다시 만났다. 운전석엔 노란 조화 꽃다발이 예쁘게 묶여있다. 이 장면을 전에도 본 것 같다. “안녕하세요!” 나도 모르게 엄청 반갑게 인사했다. 기사님은 50대 정도의 나이에 삭발한 남자분이고 얼굴은 동그란 편이다.
차 안에는 역시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여긴 나만의 공연장이고, 기사님은 공연장 오너다. 공연장에 다른 관객들도 속속 들어온다. 휴대폰을 보며 들어온 여성분이 어느 순간 휴대폰 든 손을 내리고 음악에 집중하고 있다. 표정도 부드럽게 변했다. 대화하던 승객, 아니 관객들도 곧 대화를 멈춘다. 우린 함께 다른 시공간을 달리고 있다.
내리는 게 아쉽다. 이 버스를 타고 계속 빙빙 도시를 돌고 싶다. 그래도 집에 가야 한다. “안녕히 가세요!” 기사님이 크게 인사를 해주셨다. 나도 얼른 인사를 한다.
이 짧은 시간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도시가, 이 도시에서 사는 것이 싫어질 때마다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 FM을 트는 버스 기사님이 있고 그 버스를 타고 풀치넬라를 들은 적이 있다는 걸.
역시 버스는 삶을 지탱하는 고귀한 노동공간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