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도 무더운, 아니 차라리 '무서운' 여름 더위 속, 경주는 곳곳이 공사 열기에 휩싸여 있다. 오는 10월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엿새간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가 한창이다. 전 세계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천년 고도는 지금 또 한 번 '역사 쓰기'에 들어갔다.
경북도 APEC준비지원단은 25일 경주 보문단지 일대에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소속 언론인 20여 명을 초청해 APEC 정상회의 준비 현황을 설명했다. APEC 정상회의는 한국을 포함한 21개 아시아태평양 국가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무역과 투자 활성화를 논의하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유일한 다자회의다. 1989년 한국을 포함한 12개국 각료 협의체로 출범한 APEC은 올해 제32회 회의를 경주에서 개최하며, 정상과 전 세계 기업인, 업계 관계자 등 약 2만여 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APEC을 위해 경주시는 도시의 지형을 대대적으로 바꾸고 있다. 이례적인 인파를 수용할 인프라를 마련하고, 안전한 회담을 위한 '돌다리 두드리기'식 준비가 한창이다. 건물이 새로 올라가고, 공터는 주차장으로 변하며, 낡은 길은 새 단장된다. 땅을 파면 유물이 나온다는 도시답게 대규모·고층 건물은 드물었지만, 이번 회의를 기점으로 경주의 스카이라인도 변하고 있다.
가장 공을 들이는 공간은 만찬장이다. 이재명 대통령 내외와 글로벌 CEO들이 어울릴 공간이자, 한국 전통문화를 풀어내는 무대다. 아직 외벽 공사만 한창이었지만, 목조건물의 곡선미와 장인정신이 담긴 건축은 한눈에 한국미를 보여줬다. 불과 몇 걸음만 걸으면 국립경주박물관이 위치해 있어 금관 6점의 특별 전시나 2003년 이후 멈췄던 에밀레종 타종을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이에 만찬장이 이번 정상회의에서 한국의 유산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줄 장소라고 평가된다.

차로 5분 남짓 이동하니 비즈니스 라운지와 인터뷰룸으로 꾸며질 국제미디어센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기자단 사이에서는 곧 웅성임이 일었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미완의 공사 현장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정상회의까지 두 달도 남지 않았지만 외관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채 공정률은 63~70%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업계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현장을 안내한 박장호 APEC 준비지원단 의전홍보과 과장은 "계획대로 차질 없이 진행 중이며, 10월에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며 취재진을 안심시켰다.
정상회의의 핵심 무대인 경주화백컨벤션센터로 이동해, 실제 회의가 열릴 회의실에 직접 앉아 보았다. 공간은 층별로 기능이 나뉜다. 1층은 공무원 수행원들을 위한 공간, 2층은 11월 1일 오전 APEC 정상회의 직후 이재명 대통령이 정상들과 대화하는 공간, 3층은 정상회의장, VIP 라운지와 ABAC 대표단 회의실, 4층은 식당 등으로 꾸며진다. 회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첨단 LED 영상 장비, 빔프로젝터, 음향 설비까지 세세히 손질 중이었다.
다만 일부 인프라는 아직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행사 기간 주민들이 사용하던 주차 공간 제한, 일부 생활 물가의 일시적 상승, 공사와 행사 준비로 인한 소음 등으로 지역 주민들의 불편이 불가피하다. 현재까지 구체적인 대응 방안은 큰 틀에서만 논의되고 있으며, 세부적인 실행 계획은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3곳의 APEC 주요 사업장을 돌다 보니, 더위가 점점 몸을 옥죄었다. 오후 4시에도 기온은 36도를 웃도는 날에 두꺼운 작업복을 입은 인부들은 얼음을 비닐에 담아 몸에 대며 땀을 식혔다.
무더위 쉼터로 잠시 쉬러 나온 한 현장 근로자는 "비오는 날 제외하고는 아무리 날씨가 더워도 일한다"라며 "완공 시점이 다가오고 있어 5일 근무에 하루 더 추가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주는 수도 서울에서 차로 네 시간은 족히 달려야 닿는 곳이다. 국내 여행객조차 마음을 단단히 먹고 찾아오는 거리인만큼, 21개국 정상들과 전 세계 각국 대표단에게는 긴 여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라 시대 수도였던 만큼 석굴암, 불국사, 첨성대, 동궁과 월지, 에밀레종 등 문화재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피로를 달래준다.
공개된 일정에 따르면 각국 정상들의 배우자들은 불국사에서 다보탑과 석가탑을 둘러보며 한국 전통미를 체험할 계획이다. 실제 불국사를 방문한 이날에도 외국인과 국내 관람객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현장에서 만난 터키 출신 일라는 "경주는 신라 시대의 중심지였던 만큼 한국 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도시"라고 소감을 전했다. 실제로 현지 학생들과 함께 용궁사·불국사·황리단길을 방문하며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경주의 매력을 즐겼다고 덧붙였다.
APEC 정상회의 기간에는 한복 패션쇼, K-팝 공연, 하회별신굿탈놀이 등 문화행사도 진행된다. 경주는 이번 회의를 계기로 보문단지를 중심으로 한류 확산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계획이다.
김학홍 경상북도 행정부지사는 "인프라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세부 프로그램도 준비를 마치고 있다. 실제 행사를 치른다는 자세로 꼼꼼하게 준비에 임하겠다"며 "행사를 성공시켜 역사에 두고두고 기억되는 APEC이 되도록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