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수용성(受容性)

2024-10-27

춘추전국시대는 교통, 산업,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여러 분야의 학문과 여러 가지 사상이 놀라울 만큼 발전하였다. 그 이유는 제후들이 천하를 통일하려고 부국강병을 꾀하며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많은 사상가와 학자들이 나타났고 이들을 제자백가라고 부른다.

춘추시대에 활동했던 사상가로는 유가사상(儒家思想)을 주장한 공자(孔子)와 도가사상(道家思想)을 주장한 노자(老子)가 유명하다. 공자는 춘추시대의 혼란과 도덕적 파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격을 존중하는 풍토를 기초로 하여 정치적 안정을 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지식을 쌓아야만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학문에 정진해야 하고, 인간관계에서는 인(仁)을, 가정에서는 효(孝)를, 인격수양을 위해서는 예(禮)와 악(樂)을 존중하여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논어’에 잘 나타나 있고 공자의 유가사상을 발전시킨 사람이 맹자와 순자다.

이에 반해 노자는 유가에서 존중하는 인위적인 도덕이나 제도를 배격하고,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돌아감으로써 대자연의 원리인 도(道)를 터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마음속에 욕망을 비우고 집념을 완전히 덜어내어 마음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 오히려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도덕경’에 잘 나타나 있고 노자의 사상은 장자에게 계승되었다.

공자는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인위(人爲) 철학을 주장하였다면, 노자는 공자와 반대로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오히려 세상이 바뀌고 구제될 수 있다는 무위(無爲) 철학을 주장하였다.

유가사상은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의 정치이념과 사회윤리의 바탕이 되었고, 도가사상은 민간신앙과 융합하여 일반인들의 생활에 녹아 삶의 지혜로 사용되고 있다.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은 세상을 대하는 방법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이 둘은 서로 배척하는 관계라기보다는 보완하는 관계로 이해하여야 한다.

‘갑을관계(甲乙關係)’는 갑과 을로 불리는 계약당사자들의 계약관계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말은 흔히 지위가 높은 이가 ‘갑’, 낮은 이가 ‘을’로 불리면서 갑을관계는 비대칭적인 권력의 상하관계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갑질’과 ‘을질’이라는 말은 권리관계에 바탕을 두면서 ‘갑’에게 혹은 ‘을’에게 횡포를 부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사이의 배려와 수용의 부재로 발생하는 문제를 인간사이의 권력 혹은 상하관계의 구조적 문제로 규정해버리는 측면이 있다. 우리는 ‘갑’이냐 ‘을’이냐에 상관없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수용과 배려, 겸손의 마음가짐으로 서로 대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수용성(受容性)’은 사전적 의미로 어떤 것이 다른 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는 것 또는 어떤 집단에 소속하고 수용되고자 하는 감정을 뜻하는데, 수용성은 ‘어떠한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인 수용능력을 의미한다. 타인을 많이 배려하면서 긍정적이고 온정적으로 수용하려면 그만큼 많이 수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채우려면 먼저 비우고, 높아지려면 스스로 낮추라는 노자의 철학이 딱 들어맞는다.

노자는 도덕경(道德經) 제8장 ‘무위무심(無爲無心) 물의 선덕(善德)편’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말하고 있다. 최상의 덕은 물과 같나니(上善若水;상선약수),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水善利萬物而不爭;수선리만물이부쟁),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處衆人之所惡;처중인지소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故, 幾於道;고, 기어도). 몸은 땅처럼 낮은 곳에 거하는 것이 좋고(居善地;거선지), 마음은 깊은 연못처럼 고요한 것이 좋으며(心善淵;심선연), 벗과 사귐에는 인자한 사람이 좋고(與善仁;여선인), 말은 믿음이 있어야 좋으며(言善信;언선신), 정치는 잘 다스리는 것이 좋고(正善治;정선치),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능숙한 것이 좋으며(事善能;사선능), 행동을 함에 있어서는 적당한 때를 가려 하는 것이 좋다(動善時;동선시). 이렇게 하면 다투지 않게 되니(夫唯不爭;부유부쟁), 그러므로 아무런 잘못이나 허물이 없게 된다(故, 無尤;고, 무우).

물은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네모나게, 동그란 그릇에 담으면 동그랗게, 차게 하면 얼음이 됐다가, 따듯해지면 다시 물이 되고, 열을 가하면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고, 다시 비가 되어 땅에 내려와 자연을 살린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바다로 흘러가는데 바다는 모두를 받아주고 어디서 왔는지를 따지지 않고 수용하며 화합한다.

이처럼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힘이 있고, 높은 곳에 머물 수 있지만 머물지 않고 스스로 낮은 곳으로 흘러가기에 최고의 선을 지닌 존재로 보는 것이다. 또한 바다는 이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들인다. 상선약수나 부유부쟁은 누구나 아는 내용이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비움과 수용성의 이치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우리 인간 삶에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덕목이다.

김동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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