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르셀로나의 고딕 지구는 대성당 등 중세 건축물과 중층 아파트가 밀집한 구도심이다. 도심 주거지 안에 자리한 산타카테리나 시장은 과일과 채소 따위 식료품을 공급하는 전통적인 유통시설이었다. 이 자리에 13세기에 지은 산타카테리나 수녀원이 있었으나 1845년 방화사건으로 파괴된 후, 양철지붕을 씌운 이 도시 최초의 근대 시장이 들어섰다.
그러나 백화점 등 현대 상업시설에 밀려 시장은 활력을 잃고 쇠락해졌고 시 당국은 시장 재생을 위한 현상 경기를 개최했다. 엔리크 미라예스(1955~2000)의 리모델링 안이 당선되어 8년 공사 끝에 2005년 재개장했다. 그는 지난 세기 후반 국제적 명성을 떨친 바르셀로나의 건축가였으나 공사 도중 사망해 유작으로 남았다.

시공 중에 고대와 중세 유적이 발굴되어 시장 한편에 현장 박물관을 마련했고, 광장 쪽의 기존 시장건물을 새로 단장해 재활용했다. 고급스러운 푸드코트를 신설했고 지하 주차장을 대폭 증설해 편의시설을 확보했다. 기존 매대의 수를 줄이고 통로를 넓혀 만든 넉넉한 공용 공간은 만남과 휴식의 공공장소가 되었다.
6개의 부정형 목조 지붕틀을 서로 엇갈리게 붙인 거대한 파도 모양의 지붕이 시장 전체 공간을 덮었다. 중앙을 관통하는 아치형 철골 프레임 두 개가 지붕을 지지한다. 1700평 넓이의 지붕면은 특수 제작한 육각형 채색 타일로 마감했다. 67개 색상으로 이루어진 지붕면은 과일과 채소, 가공식품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마치 알록달록한 대형 식탁보를 펼쳐 놓은 듯하다. 주변의 건물에서 보면 시장 지붕은 도시의 수퍼 그래픽이 되어, 지붕이 정면이 되는 풍경, ‘루프스케이프(roofscape)’를 창조했다.
우중충했던 전통시장이 환골탈태, 밝고 멋진 공공장소가 되었고 국제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피카소와 가우디를 배출한 바르셀로나의 예술적 장인적 전통을 잇는 이 작품은 유사한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 도시들의 벤치마킹 모델이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