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당연히 정치에 대해선 다양한 견해를 가질 수 있지만, 지난번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건은 현재 사안의 찬반을 넘어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영상에서 청년들이 앞장서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 공포였고요. 우리 치과대학 학생들이 집회에 나가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상상이 되지는 않긴 해요. 하지만, 저들과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학생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우기는 어렵습니다. 어떻게 학생들 앞에 서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수는 아니겠지만, 치과대학에 다니는 학생 중에 ‘극우’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으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치과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해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저는 2024년 의정 사태에 관한 검토 및 논의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의대생 및 의사들을 주 사용자로 하는 익명 커뮤니티 앱을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살핀 내용을 도저히 주워 담을 수 없을 것 같아 보고서에는 싣지 않았으나, 원색적인 분노와 공격, 저열한 비난을 담아 놓은 몇몇 글들을 보면서 마음이 쪼개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저도 의대에 몸담았던 적이 있기에 남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도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아연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중 일부는 기억하시는 것처럼 언론에 공개된 적도 있었지요.
이들 극우 청년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오늘 읽었습니다. 이들은 미국의 큐아논(QAnon, 트럼프 지지자 중 일부 또는 그들의 이론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음모론에 기초)과 같은 방식으로 현상을 음모론에 기초한 시각으로 파악하고 있었어요. 이 모든 일에 배후, 중국의 침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사주나 지원을 받은 특정 당이나 정부 기관이 있으니 철저히 파헤쳐야 하며, 이를 실제 행동으로 옮긴 대통령이 위기에 빠졌으니 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였지요.
제가 그 진위를 따질 능력이 되지도 않고 여기에서 좌우 한쪽을 편들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현실을 인식한다고 해도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허용될 수도 없고, 허용되어서도 안 되지요.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몇몇 의대생이나 의사들이 모 커뮤니티에서도 동일한 접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휴학이나 전공의 사직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지요. 하지만, 자신과 동일한 선택을 하지 않는(즉, 계속 학교에 다니거나 수련을 받는) 이들을 체제의 음모를 영속시키는 이들로 규정하고 비난을 가득 담아 명단을 공개하거나 다시 옮기기도(사실, 떠올리기도) 싫은 모욕을 던지는 것은 허용되어선 안 되니까요. 그리고 치과대학 학생들이 여기에서 엄청나게 멀리 있다고 자신할 만한 근거가 저에게는 없습니다. 다 옮길 일은 아닙니다만, 오히려 걱정되는 모습들을 발견하며 힘이 꺾일 뿐이죠.
이런 상황이 문제가 되는 것은 저희가 가르치는 것이 의사이기 때문입니다. 히포크라테스 이래로, 의사들은 자신이 시장이나 다른 경로로 만날 수 있는 유사 업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윤리 강령을 채택해 왔습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등장한 이유도, 여러 시대와 국가를 통틀어 계속 의사들이 자신을 규정하는 규칙이나 규범을 생성하고 그 준수를 구성원에게 요구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지요. 물론, 그것은 의사들의 독점을 강화하기 위한 요식 행위처럼 여겨지는 부분이 일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환자를 위한 규정들이라면 그렇게 비난할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의업(醫業)의 근본을 다시 생각하게 하지요.
치과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치과 의사』를 써서 외과에서 세부 전문 분야로 치과를 정립한 피에르 포샤르는 책에서 말합니다. “나 자신이 공공(公共)에 가장 유용한 존재가 되기를 소망한다.” (xxvi쪽) 자신이 치의학 지식을 책으로 공개하는 이유는 책을 팔아 돈을 벌고자 함도, 제자를 모으고자 함도 아니며 잘못된 지식으로 인해 구강병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돕고자 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정신을 저희는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이라고 하여, 남들이 자기 이익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전문가로서 환자와 사회의 이득을 우선하는 마음으로 구분해 왔습니다.
이런 마음을 애초부터 타고나지는 않을 테니, 저희는 학교에서 이를 가르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과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돌을 들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전문직업성을 가르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타인의 이득을 고려할 준비는커녕 타인을 동등한 존재로 바라볼 생각이 없는 이들에게, 환자의 이득을 우선하고 차별하지 말라는 말이 다가오긴 할까요.
쉽지 않은 일이고 저도 지쳐서 어떻게 할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만, 지면을 빌려 함께해 주시는 선생님들께 두 가지를 청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비판적 사고에 대한 옹호, 다른 하나는 치과의사 전문직으로서 삶에 대한 공유입니다. 관련 문헌이 많지 않으나, 대학에 스며든 음모론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에 관한 몇몇 논문은 비판적 사고의 강조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비판적 사고는 근거기반의학에서 말하는 논문의 신중한 검토와 같습니다만, 이를 치과의사로서의 업무와 삶의 다른 영역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하여 무엇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을지에 대해 성찰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대학생은 입시로 인해 유예된 청소년기를 경험하고, 정체성을 뒤늦게 형성해 가게 됩니다. 이때 경직된 권위와 위계에 노출되는 의료 계열 학생들은 자신이 정체성을 탐색하기보다 타인의 권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선택을 하기 쉽지요. 한 교수님은 학생들이 나쁜 것만 빨리 배운다, 는 말씀을 종종 하셨는데, 그것은 학생들의 무비판적인 수용을 가리키시는 말일 겁니다.
다르게 가려면, 즉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려면 학생들이 주어진 것 외에 다른 생각이나 삶도 따져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희에겐 치과의사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습니다. 저는 몇 년간 예과를 담당하면서 여러 학생을 면담해 왔는데, 학생 대부분은 주 진로를 개원의라고 답합니다. 이유가 있냐고 물어보면 편해서, 안정적이어서 같은 대답이 나와요. 저는 늘 학생들에게 개원의의 삶도 무척 다양하고 다른 방식으로 펼쳐진다고 이야기해 주곤 했습니다만, 그 이상은 말해 주기 어려웠어요. 저도 개원가에서 봉직의로 몇 년 일한 경험이 있지만, 제 경험은 거기에서 끝이기 때문입니다. 치과의사로서의 삶과 보람을 듣고 나누는 경험은 저에게도 극히 드문 일이네요.
제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이 자리에서 도움을 청합니다. 함께 해 주십시오. 나누고 말해 주십시오. 치과의사로서 환자와 주변을 돕고 살핀 이야기들을, 돌보아 온 노력을. 올해 치협 100주년을 맞아 여러 행사가 있습니다만, 이 폭력의 시대에 치의학과 치과계의 다음 100년을 생각하며 감히 청해봅니다.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