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장기영 기자] 지난해부터 시행된 새 보험 국제회계기준(IFRS17)으로 인한 혼란은 올해도 이어졌다.
보험사들이 보험계약마진(CSM) 확대에 치중해 상품 판매 경쟁이 과열되자, 금융당국은 건전성 관리와 소비자 보호를 이유로 번번이 막아섰다.
특히 대형 손해보험사들은 올해 3분기까지 사상 최대 순이익을 행진을 이어가는 실적잔치에도 웃을 수 없었다. 실적 부풀리기 논란 속에 금융당국이 제시한 계리적 가정 가이드라인 적용이라는 최대 변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 D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현대해상, KB손해보험 등 5개 대형 손보사의 개별 재무제표 기준 올해 1~3분기(1~9월) 당기순이익은 6조7105억원으로 전년 동기 5조6519억원에 비해 1조586억원(18.7%) 증가했다.
이 기간 5개 대형사의 당기순이익이 일제히 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KB손보를 제외한 4개 대형사의 당기순이익이 1조원을 웃돌았다.
특히 올해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IFRS17 시행 전인 2022년 같은 기간 3조5613억원의 2배에 가까운 규모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IFRS17은 보험부채를 기존의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새 회계기준이다. 보험계약 체결 시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익의 현재 가치인 CSM을 반영해 보험이익을 산출한다.
회계기준 변경만으로 2년 새 당기순이익이 2배가량 급증하면서 실적 부풀리기 논란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속됐다.
대형 손보사들이 올해 1분기부터 계속해서 사상 최대 당기순이익 행진을 이어가면서도 웃음을 감춰야 했던 이유다.
일부 보험사가 지나치게 낙관적인 계리적 가정을 사용해 실적을 부풀린다는 논란은 IFRS17 시행 이후 끊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보험사에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당초 IFRS17 도입 취지와 달리 금융당국이 수시로 계리적 가정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혼란이 되풀이됐다.
특히 금융당국은 건전성 관리와 소비자 보호를 이유로 여러 차례 보험사들의 상품 판매에 제동을 걸었다.
금융당국은 올 들어 보험사들이 과도하게 보장 한도를 높여 건전한 경쟁을 저해하고 불완전판매를 유발한다며 보험상품 개발 시 담보별 적정 수준의 보장 한도를 설정하도록 했다.
신고상품의 경우 상품신고서에 보장금액 한도 산정 근거를 기재하도록 의무화하고, 자율상품은 일부 담보에 대해 기초서류에 보장 한도를 기재하도록 했다. 보장금액 한도 경쟁을 유발했던 운전자보험 변호사비용과 교통사고 처리지원금, 입·통원일당, 간병일당 등의 담보를 겨냥한 조치다.
앞서 금융당국은 생명보험사들이 보험료 납입 완료 시점에 100% 이상의 높은 환급률을 보장한다며 판매 경쟁을 벌였던 단기납 종신보험 판매에도 제동을 걸었다.
생보사들은 무·저해지형 상품 설계를 통해 보험료 납입기간 중 중도 해지 시 해약환급금이 없거나 적은 대신 납입 완료 이후에는 장기유지 보너스를 지급해 해약환급금이 늘어난다며 단기납 종신보험을 5~7년 만기 저축성보험처럼 판매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납입 완료 시 환급률을 100% 이하로 제한하고, 납입 완료 이후부터 10년까지는 장기유지 보너스를 지급할 수 없도록 했다.
올해 연간 결산을 앞둔 보험사들은 무·저해지보험 해지율, 단기납 종신보험 해지율 등에 대한 계리적 가정 가이드라인 적용으로 또 한 번 큰 혼란을 겪고 있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올해 연말 결산부터는 무·저해지보험 해지율 산출 시 완납 시점 해지율이 0%에 수렴하는 로그-선형모형을 원칙모형으로 적용해야 한다.
이는 경험통계 부재를 이유로 높은 해지율을 가정해 수익성을 부풀리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금융당국은 선형-로그모형, 로그-로그모형 등 예외모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도, 예외모형 선택 시 현장점검을 실시하겠다며 원칙모형 적용을 사실상 압박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해지율을 높게 가정해 온 일부 대형 보험사는 CSM과 당기순이익, 지급여력(K-ICS)비율에 변동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가이드라인에는 연령 구분에 따른 통계적 유의성이 존재하는 담보는 연령대를 구분해 손해율을 산출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손해율 가정은 각 보험사의 결산시스템 수정 등 물리적 한계가 있는 경우 내년 1분기까지 반영할 수 있다.
대형 손보사 가운데 삼성화재와 메리츠화재는 이 같은 계리적 가정 가이드라인 적용에 따른 영향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삼성화재의 경우 무·저해지보험 해지율 가이드라인 적용 시 CSM이 약 10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일부 대형사는 가이드라인 적용에 따른 충격파가 큰 것으로 추산되면서 실적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연말 결산 시 CSM과 당기순이익 감소 폭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알려진 한 대형사의 경우 올해 결산배당이 불가능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면서 급격한 주가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일부 보험사의 경우 계리적 가정 가이드라인 적용에 따라 올해 연말 결산 실적이 크게 변동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시장금리 하락 여파와 맞물려 내년에도 수익성과 건전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