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경향]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처음으로 동성 배우자 입력이 가능해졌다. 지난 10월 22일부터 시행 중인 2025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성별이 같은 경우에도 가구원과 가구주의 관계를 ‘배우자’ 또는 ‘비혼 동거’로 입력할 수 있도록 했다. 그동안에는 동성 간 ‘배우자’를 선택하면 오류 메시지가 떴다.
인구주택총조사는 국가정책 수립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5년마다 전국 가정의 20%를 표본으로 조사한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정책 설계를 위한 기반 통계다. 올해부터 바뀐 입력 방식은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가 국정감사에서의 지적과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반영한 조치다. 특히 지난해 7월에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동성커플의 국민건강보험공단 피부양자 자격 박탈이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이라는 판단이 나왔다. 동성커플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판결도 국가데이터처가 관련 통계 항목을 마련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됐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통계 방식의 변화를 토대로 다양한 가족 구성의 현실을 반영한 활발한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은 지난 21대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인구주택총조사 문항이 동성 배우자를 허용하지 않는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장 전 의원은 “기존 통계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로 인해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왔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국회가 입법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국민의 다양한 삶을 반영한 정확한 데이터가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정책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라며 “공신력 있는 데이터는 사회적 합의 형성의 기반이 돼 관련 입법 추진의 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림 모두의결혼 대표는 “나 역시 배우자와 함께 살고 있지만 그동안은 단순히 ‘가구원’으로만 분류돼왔다. 이번 조사에서는 응답자로 선정돼 ‘배우자’로 기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연방 차원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된 것이 2015년이지만 인구조사에 관련 항목이 포함된 것은 1990년대부터”라며 “성소수자들이 동성 배우자와 함께 어떻게 어디서 살아가는지를 국가가 정확하게 알아야 관련 법과 제도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동성결혼 법제화를 위한 입법적인 논의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독교계 반발에 입법논의 소극적
그러나 국회는 다양한 가족관계의 변화를 반영한 입법 논의에 소극적인 상황이다. 지난 10월 16일에는 한국 동성부부가 전국 6개 법원에 ‘혼인평등소송’을 제기한 지 1주년을 맞이해 ‘국제 혼인평등 콘퍼런스’가 열렸다. 시민단체 무지개행동·모두의결혼과 이재정(더불어민주당)·용혜인(기본소득당)·신장식(조국혁신당)·손솔(진보당)·정혜경(진보당)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국회에서 관련 행사가 열린 건 2015년 정의당이 주최한 ‘동성 파트너십 권리 국제 심포지엄’ 이후 약 10년 만이다. 손솔 의원실 관계자는 “동성혼만을 주제로 하는 토론회가 국회라는 공간에서 열렸다는 것이 굉장히 큰 의미”라며, ‘동성혼’이란 주제가 쉽사리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유로 ‘종교’와 ‘교섭단체 조건’을 꼽았다. 그는 “종교를 기반으로 정치 활동을 하는 의원도 많고 거대 양당의 의원들은 기독교의 영향력 때문에 부담을 느낀다”라며 “소수정당도 부담이 없지 않지만, 진보정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렵게 ‘동성혼 법제화’ 관련 법안을 발의해도 소수정당이기에 교섭단체 조건에 막혀 법안 논의조차 못 한 채 임기 만료로 폐기된다. 진보정당의 노력만으로는 국회 안에서 활발히 논의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21대 국회에서 장혜영 전 의원이 최초로 ‘혼인평등법’을 발의했지만, 이후 관련 논의는 진전되지 못했다. 22대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이 아직 한 건도 발의되지 않았다.
19대 국회에서 처음 논의됐던 생활동반자법도 10년이 넘도록 진전된 논의나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동성 커플, 1인 가구, 비혼 동거, 비성애 관계 등 혼인이나 혈연에 기반하지 않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제도적으로 포괄하고 이들에 대한 권리 보장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이다. 2014년 진선미 민주당 의원이 최초로 준비했지만 발의되지 못했다. 당시 진선미 의원실에서 법안을 마련하고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책 <외롭지 않을 권리>를 쓴 황두영 작가는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비혼 청년, 성소수자 등 여러 관계가 해당할 수 있겠지만 사실 첫 번째로는 중노년층을 꼽는다. 불과 몇십 년 전에는 중년이면 당연히 배우자가 있을 것이라고 전제했다. 현재는 여러 통계를 봐도 이혼, 사별 등으로 인해 수십 년 동안 혼자 살아야 할 가능성이 큰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 준비할 당시에는 국회뿐 아니라 시민사회 전반에서도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반대 세력은 이 법안을 ‘동성혼’으로만 규정해 반발했고, 법안은 발의 단계조차 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생활동반자법, 22대 국회에서는
생활동반자법이 처음 발의된 것은 21대 국회로 당시 용혜인·장혜영 의원이 발의했다. 2022년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국회의장에게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제도적 권리 보장을 위해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 내에서 생활동반자법은 여전히 ‘동성혼’ 프레임으로 왜곡되며 논의 자체가 차단됐다. 2023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은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민주당 의원들이) 마치 동성혼이 아니라 1인 가구에 대한 것인 양 말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며 “민주당이 동성혼을 주장하고 싶으면 1인 가구 핑계 대지 말고 당당하게 주장하라”고 대답했다.
22대 국회에서는 지난 9월 용혜인 의원이 법안을 재발의했지만 여전히 국회 내 논의는 미온적인 상황이다. 용혜인 의원실 관계자는 “22대 국회가 시작된 지난해 6월부터 재발의를 준비했다. 시간이 오래 걸렸던 데는 공동 발의를 할 의원들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후보자 시절부터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진일보한 입장을 보여줬던 만큼 입법 논의를 잘 이끌어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 장관은 후보자 시절 “실재하는 가족 현황과 외국 사례, 국민 기본권 보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관련 논의가 진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22대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까. 황두영 작가는 “10년 전과 비교하면 생활동반자법 필요성에 공감하는 시민이 늘어났고, 그사이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사회변화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됐다.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늘어났다. 이전에는 유럽에도 이런 제도가 있으니 우리도 생각해보자는 당위의 차원이었다면, 지금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가 됐다”라며 “다만 동성애를 혐오하는 세력 때문에 생활동반자법을 두고 사회가 오랜 기간 고민하고 주저하고 있다. 끝내 동의하지 않는 이들의 신앙과 믿음은 바꿀 수 없을 것 같다. 찬성하는 여론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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