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38·SSG)의 대기록이 빛났던 건 상대 투수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13일 최정에게 홈런을 맞기 전까지 NC 라일리 톰슨(29)은 2피안타 무실점 호투 중이었다. 최고 154㎞ 빠른공에 낙차 큰 변화구로 상대 타선을 압도했다. 이숭용 SSG 감독도 “직구도 워낙 빠른데 얼굴 높이에서 떨어지는 커브와 체인지업이 워낙 위력적이었다. 대처하기 쉽지 않겠다고 봤는데, 실투 딱 하나 들어온 걸 놓치지 않았다”고 했다. 라일리는 KBO역사에 남을 대기록에 어울리는 공을 던졌고, 그걸 이겨냈기에 최정의 홈런도 더 대단한 것이었다.
라일리 역시 자신의 투구에 아쉬움은 없었다고 했다. 14일 경기 전 그는 전날 피칭을 돌아보며 “내가 봐도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경기였다”고 했다.
기록의 ‘희생양’이 되었지만 라일리는 오히려 환하게 웃었다. 라일리는 “경기 끝나고 팀 동료들하고도 얘기를 많이 했다. KBO리그 역사에 내 이름을 한 줄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뜻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최정의 기록을 두고 ‘어메이징’이라는 말을 연발했다. 500홈런은 150년 역사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도 28명 밖에 해내지 못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평생 야구를 해온 라일리 역시 얼마나 위대한 기록인지 모를 리가 없다.
라일리는 “최정 선수가 정말 대단한 기록을 세웠다. 꼭 한 번 만나서 이야기 해보고 싶다. 같이 사진도 찍고 싶다.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라일리가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느 가운데 최정은 또 한차례 자신의 클래스를 증명했다. 500홈런을 때려내고 바로 다음 14일 경기에도 홈런을 때려냈다. 501호 홈런으로 다음 목표를 향한 출발을 알렸다.
라일리는 SSG전까지 9차례 등판해 5승 2패 평균자책 3.55를 기록 중이다. 시즌 초반 기복이 있었지만, 어느새 가장 믿을 수 있는 실질적인 에이스로 자리매김 했다. 최근 4경기 동안 총 25이닝을 던져 불과 3실점만 했다. 라일리는 “이용훈 투수코치님과 계속해서 소통하며 구종 선택 같은데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는 데 결과가 좋게 나오는 것 같다. 포수 김형준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매경기 치르면서 신뢰가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라일리는 이번 시즌 NC의 승부수였다.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뛸 당시 라일리는 강력한 구위로 국내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최종 선택을 받지는 못했다. 불안한 제구가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NC는 미국보다 더 던지기 편한다는 KBO 공인구 효과가 더해진다면 라일리의 제구 역시 크게 문제 될 것이 없고, 구위는 오히려 더 강력해질 것이라고 봤다. 시즌이 진행되면서 NC의 승부수는 점차 맞아 떨어져가고 있는 중이다.
라일리 역시 다른 선수들과 함께 한 달이 넘도록 ‘원정 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낯선 나라에서 생각도 못한 경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힘들지 않으냐는 말에 라일리는 “그런 부분은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잇는 야구를 즐기고, 좋은 투구를 하는 데 집중하려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