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복상장이 문제라면 주식을 사지 않으면 된다."
중복상장 논란을 둘러싼 구자은 LS그룹 회장의 강도 높은 발언에 뒷말이 무성하다. 재계 큰 어른으로서 기업의 어려움을 대변한 것일 수 있겠지만, 최대주주의 지배력 유지라는 중복상장의 본질을 외면하는 모습이어서다.
7일 재계에 따르면 구자은 회장은 전날 '인터배터리 2025' 행사장에서 비상장 계열사 중복상장에 대한 취재진의 질의에 "예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논란이 되더라"며 이 같이 밝혔다.
특히 구 회장은 "작은 회사가 성장하려면 계속해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데, 조달 방법이 제한적"이라며 "중복상장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상장 후 주식을 안사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LS그룹은 LS일렉트릭 자회사 KOC전기, 슈페리어에식스 자회사 에식스솔루션즈의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계획을 접었던 LS이링크도 재도전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상장할 경우 자연스럽게 모기업 주주가 피해를 볼 수 있는 만큼 시장 일각에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전날 증권시장에서 지주회사와 LS일렉트릭을 비롯한 LS그룹 계열사 주가가 많게는 10%, 적게는 2%가량 떨어진 것도 맥을 같이한다.
행사장에서의 발언으로 미뤄 구 회장도 시장의 이러한 분위기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번 발언에 대한 평가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타 기업의 사례로 중복상장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음에도 구 회장이 여전히 기업 오너 중심의 논리를 펴고 있어서다. 투자자를 외면하는 것처럼 비친다는 얘기다.
물론 구 회장이 언급한 내용 중 '자금 조달 방법이 제한적'이라는 게 100% 틀린 말은 아니다. 보통 기업이 외부에서 돈을 끌어오는 방법은 ▲대출 ▲채권발행 ▲상장·투자유치 등으로 압축할 수 있는데, 그간 상황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고금리 기조에 따른 이자 부담에 기업 입장에선 대출을 일으키기 부담스러운 국면이 계속됐다. 여기에 비상계엄과 탄핵이란 국내 정치적 상황이 얽히면서 회사채 시장도 급격히 얼어붙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회사채 수요예측에 나섰다가 부정적인 반응에 계획을 접은 곳도 부지기수다. 따라서 현 시점 기업에 가장 유리한 자금 조달 시나리오는 상장이라는 데 대체로 이견이 없다.
하지만 LS의 사례와 같은 중복상장은 회사나 투자자 모두에게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모기업 주주는 주주대로 사업은 사업대로 그 가치가 희석될 수 있어서다. 상장 이후 자회사 주가가 기대보다 낮으면 모회사·자회사 모두 시장 신뢰를 잃으며, 투자자는 손실을 떠안게 된다. 이해상충 문제도 불러올 수 있다. 모회사와 자회사 사이의 거래가 어느 한 곳에 유리하게 이뤄지는 경우 다른 쪽의 주주는 피해를 본다.
확실히 이득을 보는 쪽은 오너일가를 포함한 지배주주뿐이다. 유상증자로 자본을 조달할 경우 이들도 지배력 유지 차원에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데, 상장을 시도한다면 추가 자금을 들이지 않고 지배권을 지키는 것은 물론 기업의 덩치도 키울 수 있다.
구 회장의 발언에 여러모로 무책임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LS그룹 관계자는 "기업을 한 단계 성장시키고 주주와 이익을 공유한다는 목표 아래 각 계열사의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이번 건을 계기로 주주와의 소통을 강화해 오해를 해소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