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퇴임이 약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검사 출신이자 최연소 금감원장으로 주목받았던 이 원장은 3년 임기를 완주한 금감원장으로도 이름을 남기게 됐다. 지금까지 3년 임기를 완주한 금감원장은 윤증현, 김종창, 윤석현 등 세 명뿐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의 퇴임일은 다음달 5일이다. 6월 3일 대통령 선거 후 새 정부가 구성된 뒤 인선 작업까지 시간이 필요한 만큼 당분간은 이세훈 수석부원장 직무 대행 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금감원장은 금융위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금융권에서는 이 원장의 퇴임을 앞두고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의 위상을 높이고 금융권의 밸류업을 이끈 점은 긍정적이나 금융위원회와 합이 맞지 않아 정책상 혼란을 준 점 등은 아쉬운 부문으로 꼽았다.
실세 금감원장, 금융사 내부통제 강화 이끌어
'윤석열 사단'의 막내로 알려진 이 원장은 2022년 6월 금감원장에 올랐다. 윤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만큼 이 원장은 취임 초부터 '실세 금감원장'으로 활약했다. 이 원장의 메시지가 곧 대통령의 의중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시장과도 적극 소통했다. 레고랜드, 새마을금고 뱅크런, 태영건설 워크아웃 등 다양한 사건사고에서 직접 백브리핑을 진행하며 사태 해결에 나섰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검사 출신인 만큼 사건·사고 발생 시 피의자를 대하듯 다소 말이 거친 부분은 불편했으나 힘센 감원장이었기 때문에 금융질서를 해칠 수 있는 사건이 빠르게 안정화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적극적인 행보는 금융감독원의 위상 강화로 이어졌다. 과거 대비 금감원 검사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졌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금융권의 적극적인 내부통제 강화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이 원장이 기업 밸류업을 강조하며 적극적으로 해외 IR 행사를 진행한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금감원은 홍콩, 뉴욕, 영국·독일 등에서 해외 IR 행사를 열고 국내 자본시장 선진화 추진 경위 등을 알리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앞장섰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감독당국의 수장이 직접 IR에 나서 투자자들을 설득한 부분은 인상 깊었다. 특히 한차례로 끝난 것이 아니라 임기 내내 해외 IR을 정례화한 부분도 긍정적인 부분"이라며 "투자자들에게도 좋은 시그널을 줬고 주가 상승으로도 이어진 부분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임기 내내 '월권논란'···지난친 인사개입 지적도
기업 밸류업 강화, 책무구조도 도입을 통한 내부통제 강화 등은 긍정적인 효과를 줬지만 이 원장의 거침없는 발언으로 다양한 논란도 벌어졌다. 금융위·금감원 두 금융당국 수장 간의 정책 엇박자부터 금감원장의 '월권 논란' 등이 이 원장의 임기 내내 꼬리표로 따라다녔다.
통상 장관인 금융위원장이 메시지를 내면 차관급인 금감원장은 이에 대해 별다른 메시지를 내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이는 금융시장에 혼선을 주지 않는 동시에 장관 발언에 힘을 실어주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이 원장은 이 같은 관례를 깨고 가계부채를 놓고 금융위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시장 혼란을 초래했다. 이 원장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시장개입을 언급했으나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은행의 자율적인 대출 관리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논란이 커지자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보기에 불편한 부분이 있거나 은행, 소비자들이 힘드셨다면 사과 말씀 드린다"고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최근에도 이 원장은 상법 개정안 거부권에 대해 '직을 걸고 반대한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이 원장은 실제로 임기 약 두 달을 남기고 사의를 밝혔으나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F4 회의) 참여 멤버들이 반대하며 남은 임기를 이어가기로 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 원장이 가계대출, 상법개정안 등에 대해 마치 본인의 생각을 금융당국의 방향인 것처럼 이야기 한 부분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서 "기업은 금융당국 수장의 한마디에 사업 방향의 길을 잃을 수 있다. 두 기관 수장의 소통 부족이 이 원장 임기 내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CEO의 책임 범위를 넓히고 금융지주 회장·은행장 인사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불편한 기류가 감지됐다. 실제로 이 원장은 취임 후 금융지주 회장들의 장기집권을 '제왕적'이라고 비판하며 연임을 막아섰다. 우리금융의 부당대출 사고 이후에도 임종룡 회장의 임기에 대해 여러 차례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질서를 확립한다는 명분 아래 지나치게 금융사들을 몰아붙였다. 더군다나 CEO 선임 과정에 개입한 것은 금융사의 자율성을 훼손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금융사 CEO, 이사회 의장들에 대한 소집이 지나치게 잦아 막상 집중해서 일해야 할 때 집중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모두 금융사고가 CEO 책임으로 몰리는 부분도 금융사 입장에서는 부담"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사들 "차기 금감원장, 규제완화·자율성 보장해달라"
한편 금융권에서는 차기 감독당국의 수장은 금융권의 시스템을 해치지 않고 규제완화의 길을 열어주길 바란다는 의견을 내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 3년간 이복현 원장의 존재감은 돋보였으나 금융사들은 암흑기로 표현될 정도로 새로운 사업에 나서기 힘들었다"면서 "차기 금감원장은 불합리한 규제를 풀어주며 금융사들에게 새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금융시스템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상생, 사회공헌은 금융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치적인 목적이 담기면 안 된다"면서 "정부가 잘못된 시그널을 주게 되면 외국인 주주 이탈로도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기존의 금융 시스템을 해치지 않도록 해달라"고 언급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금융정책이 과하게 실행되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금융당국 수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지만 독립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