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씩 들여다보는 페이스북에 축의금 관련 포스팅이 부쩍 늘었다.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모 국회의원 딸 결혼식 축의금이 화제가 되고 나서부터다. 의견들이 분분하다. 축의금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페친도 있고 그 반대의 글도 있다. 축의금 문화에 반기를 든 포스팅에 ‘좋아요’가 조금 더 많아 보인다. 스트레스가 꽤 있었음을 짐작게 한다. 그래도 쉬이 뭐라 하기 어려운 문제다.
연전에 선친이 돌아가셨을 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가족끼리 치렀다. 저마다 마음부터 바쁜 12월 중순이라 애써 부고를 알리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지인들이 많이 서운하다고 했다. 그러나 멀리 지방에까지 와야 하는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모바일 부의금은 애초 생각조차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남의 관혼상제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이 열심히 얼굴을 내밀었다. 물론 봉투를 들고서다.

나는 여태 결혼기념일도 단 한 번 챙겨보지 못했다. 이제는 결혼한 지가 꽤 되어 날짜까지 가물가물하다. 아내 생일이라고 근사한 식당에서 외식 한 번 한 적이 없다. ‘짠’ 하고 꽃다발을 내민 적도 없다. 내 생일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음력으로 쇠다 보니 어떤 해는 아무도 모르고 지나간다. 딸아이, 아내 생일은 한 달 내 가까이 있다. 그래서 케이크 하나를 놓고 한꺼번에 축하해 왔다. 촛불도 동시에 후 불어 껐다. 가끔 지인들이 놀린다. 결혼기념일도, 아내 생일도 안 챙기고, 그래도 쫓겨나지 않는 게 용하다고.
나는 가족 간에도 의례적인 치레는 지양하고 있다. 그래도 무탈하게 산다. 그런 내가 생일을 챙겨준 존재가 딱 하나 있긴 하다. 3년 전에 떠난 반려견이다. 선천성 호르몬 부족으로 인해 17년간 고생만 하다가 떠났다. 허약한 몸으로 우리 가족에게 즐거움을 준 소중한 존재였다. 그래서 생일에는 나름 ‘특식’을 제공해 주곤 했다. 오늘 아침 정원에 구절초가 피었다. 구절초가 피면 가을이 떠날 채비를 한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