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관통한 집념의 회화...한국 추상회화 거장 서승원 인터뷰 [더 하이엔드]

2025-06-16

나의 기하학적 추상의 발상은 정체성에 있다. 창호지 문의 은근한 미, 백자의 형과 선, 다락방 벽에 붙어있던 민화, 고추장 익는 냄새, 다듬이 두드리는 소리가 체화된 것이다.

사색과 명상의 미학

서승원 화백의 그림은 온화하다. 색이 여러 겹 중첩되어 발현하는 깊이와 울림은 사색의 세계로 안내한다. 하지만 지금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젊은 시절 작가의 실험 정신은 거칠고 뜨거웠다. 1941년생인 서 화백은 기하 추상 그룹인 ‘오리진(1962년)’과 전위미술단체 ‘한국아방가르드협회(1969년)’의 창립회원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추상 미술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1960년대부터 기하학적 추상에 한국의 정신성을 결합하는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그 중심축은 현실 세계와 내면세계가 하나의 ‘장(場)’으로 존재한다는 개념의 ‘동시성(Simultaneity)’이다. 60여년간 이 개념에 천착해 수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모교인 홍익대학교에서 2007년까지 33년 동안 교수로 재직한 뒤 지금은 경기도 포천과 서울 작업실을 오가며 작업한다. 아무리 친한 사람에게도 작업실 주소를 알려주지 않는다. “누가 오는 게 싫은 게 아니라 작업을 위해서”다. 규칙적인 하루를 ‘완수’하는 꾸준함이, 순례길처럼 걸어온 시간이 한 가지 주제에 평생을 바치게 했다. 지난 2021년, PKM 갤러리는 ‘서승원:동시성-무한계’를 통해 1960년대부터 2021년까지 작가의 작품 연대기를 조망했다. 올해는 6월 5일부터 7월 12일까지 같은 자리에서 ‘The Interplay(상호작용)’이라는 부제를 단 새로운 개인전이 열린다. 2021년 이후 그의 최근작 2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작품 연대를 보여준 지난 전시와 달리, 이번에는 최근작만 소개한다. 4년 전에는 대규모 전시였고, 회화·판화·소묘·아카이브 등 다양한 매체를 소개했다.

“이번 전시는 최근작 중 100호 이하의 핵심적인 작품만 골랐다. 빛과 색, 시간과 공간이 상호작용하며 확장하는 밀도 높은 회화의 세계를 보여줄 것이다.”

‘동시성’을 주제로 60년 넘게 작업했다.

“1963년부터다. 동시성은 한 마디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으로 피안(彼岸)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이 나를 통해 동시에 발현하게 하는 것이다.”

아까 작업 일지를 보니, 지난해에만 100여 개가 넘는 작업을 했다. 이 정도면 다작 아닌가.

“아니다. 매일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한다. 작업실에 들어오면 나가는 법이 없다. 빵 두 개를 점심으로 먹고 작업에만 몰두한다. 이렇게 매일 반복하니까 작품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20대부터 몸에 밴 생활 스타일이고 외길 인생이다.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가.

나이 80이 넘으니까 나에 대해 성찰을 하게 된다. 도전과 실험, 새로운 것을 추구했던 시간을 지나 지금은 나를 드러내지 않고 자아를 지우려는 것에 깊이 관심이 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어떻게 기하학적 추상에 천착하게 됐나.

“나는 4·19혁명이 일어난 1960년 대학에 입학했다. 그림 그릴 줄밖에 몰랐지만,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당시는 1948년 창설된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영향으로 사실주의 그림이 지배적이었다. 그에 반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6·25전쟁 이후 김창열·박서보 등 선배 세대가 ‘앵포르멜’ 운동을 하면서 전쟁의 아픔이나 고통을 반영한 추상 회화를 선보였다. 나는 당시 두 가지 의문이 있었다. 왜 우리는 사실주의 그림만 인정하느냐, 두 번째는 왜 서구에서 들여온 추상을 답습해야 하는가. 그래서 1963년 대학 동기 8명과 새로운 미술을 해보자고 만든 게 ‘오리진’이라는 그룹이었다.”

당시 반응은?

“욕을 많이 먹었다. 꽃 그림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이런 걸 보니 ‘미친놈’이지. 그래도 학교에 김환기 선생이 학장으로 계셨고, 이규상·이마동 등 은사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군대에 다녀온 뒤에는 선후배 사이였던 ‘신전’ ‘무동인’ 단체와 연합해 1967년 ‘한국청년작가연립전’을 열었다. 청년 작가의 실험적인 전시로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는 데 행위예술, 설치미술이 이때 처음 나왔다.”

젊은 예술가의 패기가 느껴진다.

“아방가르드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배웠다. 전위가 끝나면 박물관으로 간다고 하는데, 선구자가 돼야 후대가 물려받는다. 그땐 누가 옷을 빨갛거나 노랗게만 입어도 욕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지 않나. 우리는 피켓을 들고 ‘이것도 그림이다’라고 외쳤다. 현실의 가난과 슬픔을 미술관에 놓인 구공탄과 솥뚜껑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거다. 내 그림은 자로 잰듯한 선과 기하학적인 색면의 도형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사회는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비논리적인 것들이 많았다. 그런 현상 속에서 이성적 사고와 논리를 강조하고자 한 것이 기하학으로 발현된 거다.”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 활동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위 운동을 펼치고자 했다. 평면 작가뿐 아니라 ‘해프닝(행위예술)’이나 조각가 등 실험적 작품을 하는 작가들이 전국에서 모였다. 작가만 모여선 안 된다고 생각해 평론가를 설득해 영입했다. 1970년 창립 당시 이강소·김구림·하종현 등 작가는 12명, 평론가는 이일·오광수·김인환 3명이었다. 직접 타이핑 쳐가며 ‘AG’라는 무크지를 세 번 냈는데, 그 책이 유명하다. 활동하면서 1974년 덕수궁에서 한국 최초 ‘서울 비엔날레’를 열었던 것이 고무적이었다. 작가들이 자비로 운영한 터라 한 해밖에 열리지 않았던 건 아쉽다.”

한지와 백자에서 체화된 한국의 미감

“1971년 AG 전시에서 발표한 ‘동시성’ 작품은 한지를 겹친 16점의 설치 작품이다. 그때부터 한국적인 소재에 관심이 있었나.

처음엔 한 장을 붙이고, 다음 작업에는 두 장…이런 식으로 마지막엔 16장이 겹쳐져 있는 형태다. 시간성과 공간의 개념, 한지가 중첩될 때 보이는 아스라한 느낌이 있다. 한지는 오늘날 그림과도 연관이 깊다. 어릴 때부터 한옥에 살았고 나의 미감의 근원이 됐다. 사랑방에서 공부하다 창을 봤을 때 아스라이 드리워진 달빛의 은은한 맛, 창호지 문에서 느껴지는 흰색의 여유, 창살의 기하학적인 패턴 등이 몸속 깊숙이 배였다.”

흰색에 대한 탐구는 1975년 도쿄에서 열린 ‘5가지 흰색 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제 미술계를 휩쓴 단색화의 시초로 꼽히는 중요한 전시다.

“1972년 도쿄 무라마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야마모토 동경 화랑 사장을 만났다. 일본에서 추상미술을 이끈 인물이다. 이듬해 그가 한국에 와서 미술 시장도 둘러보고, 내 작업실에 와서 격려도 해줬다. 그때 그가 발견한 것이 ‘한국에는 일본과는 다른 고유의 흰색을 쓰는 작가들이 있다’는 거다. 그렇게 나와 박서보·권영우·이동엽·허황이 전시에 참여했다. 우리나라를 ‘백의민족’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정체성과 정신이 이 흰색에 깃들어 있다.”

한옥 이외에 한국적 미감이 영향을 준 바는?

“책가도·문방도와 같은 한국의 민화다. 책가도를 보면 입체가 아니라 완벽한 2D다. 그런 납작하고 기하학적인 패턴이 나의 기하학적 추상에도 영향을 줬다. 또 백자에도 관심이 많다. 학교 다닐 때 맹인재 선생이 동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최순우 선생이 우리를 국립중앙박물관에 데려가 백자에 대해 강의했다. 좋은 선생을 만났으니 눈이 확 트이는 거지.”

그래서일까. 작품을 보면 표백된 느낌이 든다.

“걸러진 색이라고 이야기한다. 빛이 유리를 통과할 때와 한지를 통과할 때 다르지 않나. 한지는 빛을 걸러내고, 은은하게 뿜어낸다. 고요함의 빛이다. 나는 그림 그릴 때 절제된 공간, 절제된 자세로 그린다. 과욕했다 싶으면 여러 번 지우고 다시 그린다.”

작가가 생각하는 하이엔드는 무엇인가.

“나만의 철학. 고리타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 것 없이 유행만 좇던 작가들은 지금 다 없다. 산수화 유행하면 산수화 그리고, 추상화가 뜬다고 하면 추상화 그리고. 그런 건 오래 못 간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철학을 유지하는 게 고귀함이라 본다.”

서 화백은 ‘동시성’은 도전의 연속일 뿐이라며 다시 붓을 들었다. 올가을 프리즈 서울(9월)과 프리즈 런던(10월)을 준비 중이며, 내년에는 도쿄 개인전이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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