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4월 26일 쿠팡플레이 <SNL KOREA>에 출연했다.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SNL KOREA>와 한동훈의 문제다. 누구도 한동훈이 하이리스크를 무릅쓰고 하이리턴를 기대하며 혹독한 풍자 코미디 신고식을 치르리라 기대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SNL KOREA>가 유력 정치인의 심기를 거스르며 그의 내적 모순을 가지고 놀 거라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서로 과감한 척, 통렬한 척, 생색내기 좋은 공생관계일 뿐. 실제 방송 내용 역시 예상으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지점장이 간다’ 코너에서 한동훈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본인 특유의 되물어보는 말투를 쓰는 손님 한동안(정성호)에게 소위 거울 치료를 받는 에피소드를 연기한다. 여기에 어떤 유의미한 긴장이 있는가. 이미 2년 전 온라인을 통해 공유됐던 ‘편의점에 간 한동훈’이라는 만화 내용을 그대로 가져다 구성한 대본도 안일하거니와, 해당 만화를 지배하던 강력한 분노는 완전히 삭제됐다. 만화가 지적한 건, 한동훈의 습관적 비아냥거림이 단순히 기분 나쁜 게 아니라 소통 불가능한 화법이란 것이었다. 하지만 <SNL KOREA>에선 그저 한동훈이 “내가 진짜 이러나? (중략) 되게 약 오르는구나”라며 본인 허물을 대단치 않은 우스개 삼아 넘어가는 계기로 사용될 뿐이다(웃기지도 않은데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웃음 트랙(Laugh Track)’은 덤이다). 정치인에 대한 반감으로 만들어진 콘텐츠를 베끼지만 정작 원본의 정치적 공적 맥락은 지운 채, 사적인 습관의 문제로 치환한다. 아니, 그럴 기회를 한동훈에게 제공한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유력 대선후보들을 섭외할 정도의 영향력은 있지만 변죽만 울리며 정치 풍자의 기분만 내는 <SNL KOREA>의 뭉툭한 코미디를 하나하나 나열하며 비판하기란 어렵지 않다. 당장 앞서 인용한 코너 중 <SNL KOREA> 크루 지예은 앞에서 면접을 보던 한동훈은 “최근에 우리 당이 민주당과 싸워 이긴 건 대부분 제가 했다”며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통과도 제가 법무부장관 해서 통과시켰다”고 했다. 나는 잠시 내가 맞게 보고 들은 건지 의심했는데, 이 발언은 국무위원의 정치적 중립을 위반했다는 자백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장관 재직 당시 그는 국민의힘에 입당도 하기 전이었다. 이에 대해 지예은이나 다른 크루가 꼬투리를 잡았다면 꽤 흥미로운 장면이 만들어졌겠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이런 아쉬운 순간들을 일일이 꼬집어 비판하며 한국 코미디의 암울한 현재를 진단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게다. 하지만 그보다 더 생산적인 제언을 하고 싶다. <SNL KOREA>를 비롯한 한국 풍자 코미디에 롤모델이 될 만한 진정한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소개하고 분석하는 것. 답은 멀리에 있지 않다. 바로 그 한동훈이 현재 참여 중인 국민의힘 대선주자 경선 토론이다. 부조리한 인간들이 부조리하지 않은 상식인인 척 논리로 다투는 모습만큼 탁월한 블랙코미디도 없다. 국민의힘 경선에선 한 회 한 번 이상은 웃기던 한동훈이 <SNL KOREA>에선 유머러스한 ‘영피프티’ 흉내나 내다 오는 건 우연이 아니다. 블랙코미디에 대한 로알드 달의 잠언을 조금 변용하자면, 한동훈을 포함한 국민의힘 경선 참가자들은 최고급 소시지로 포장되어 팔리기 위해 서로를 분쇄기에 넣고 심지어 어떨 땐 함께 반죽으로 섞이는 중이지만, <SNL KOREA>에선 분쇄 과정을 지운 채 소시지 광고만 나오는 식이다.

국민의힘 경선과 비교해 <SNL KOREA>가 얼마나 부족한지는 개그 소재의 생산성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이번 <SNL KOREA>의 오프닝 쇼 ‘맥도날드 트럼프 쇼’ 코너에선 홍준표와 한동훈을 패러디한 미스터 홍(정이랑)과 미스터 한(정성호)이 등장해 서로 키높이 구두와 보정속옷 유무, 눈썹 문신을 지적하며 다툰다. 만약 한 달 전 즈음이었다면 꽤 참신하고 웃긴 시도였겠지만, 이건 이미 경선 과정에서 홍준표와 한동훈, 그리고 측근 사이에서 실제로 벌어진 말싸움이었다. 많은 이들이 궁금했지만 묻지 못하던 한동훈의 키높이 구두와 머리칼에 대한 의혹을 설마 대선주자를 가리는 경선 토론에서 제기하리라 예상치 못했기에 홍준표의 질문이 큰 화제가 되었고, 친한계인 신지호 전 국민의힘 의원이 홍준표에 대해 눈썹 문신 1호 정치인이 이미지 정치를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고 반박하는 유치찬란한 과정이 생중계되었다. 세상 똑똑한 척 잘난 척은 다하던 인사들의 그렇지 못한 모습에서 오는 불일치의 우스움과 비교해, 그냥 웃겼던 남의 코멘트들을 가져와 사용하는 <SNL KOREA>의 생산성이란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 이것은 게으름의 문제인 동시에 웃음의 깊이 문제이기도 하다. 한동훈을 연기하는 정성호의 연기는 놀라운 수준이지만, 그저 화제가 된 멘트를 재활용하는 이들의 패러디엔 대상을 둘러싼 맥락의 활용이 거의 없다. 그들은 보이는 게 전부인 캐릭터다.
그에 반해 국민의힘 경선에서의 다툼에는 가시적인 웃음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행간에서 읽히는 다양한 맥락과 서사가 있다. 가령 경선 1차 토론에서 나경원과 한동훈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에 대한 좁힐 수 없는 견해차를 드러내며 격하게 맞붙었다. 그걸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밌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기에선 말하는 것만큼이나 말하지 않는 것들에서 더 흥미로운 요소들을 찾아낼 수 있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상대 후보에 대한 의혹을 모두 다 꺼내놓는 복마전에서도 각각 자녀의 학력 스펙을 위한 아빠 찬스 엄마 찬스 논란이 있던 한동훈과 나경원이 그에 대해서만큼은 서로 절대 건드리지 않는 걸 지켜보는 건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명태균 의혹의 당사자인 홍준표가 스스로를 명태균 여론조사의 피해자라 주장하는 나경원을 위하는 척 먼저 이야기를 꺼낼 때, 그 이면의 속셈은 얼마나 빤하면서도 효율적인가. 만약 <SNL KOREA>가 좋은 시사 풍자를 하고 싶다면, 이처럼 침묵 속에 의미가 숨어있는 행간을 읽어내고 꼬집을 수 있어야 할 테지만, 아무래도 요원해 보인다.
정치권에서 어이없는 상황이나 말이 화제가 될 때 흔히 ‘이러니 <개콘>이 망하지’라는 관용적 표현을 쓴다(물론 KBS <개그콘서트>는 안 망하고 부활해 방영 중이다). 현업 개그맨들의 상상력을 뛰어넘을 만큼 황당무계한 일이 실제로 벌어져서기도 하지만, 현실의 여러 맥락과 행간을 읽고 재현하는 고맥락 코미디가 부족하거나 없어서이기도 하다. 물론 선거에서 이기겠다며 드럼통에 자진해서 들어가는 나경원의 자폭 코미디와 마치 <드래곤볼>의 프리더마냥 경선 토론에선 10퍼센트만 힘을 썼다는 한동훈의 허세 코미디를 능가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잘 만든 풍자 코미디는 필요하다. 국민의힘 경선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정말 자주 웃기고 그에 대해 실소와 박장대소로 대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피드백이지만, 정치가 개그가 되는 상황의 비극성과 위험성에 대한 인식을 동반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그 웃음을 먹고 나쁜 정치는 자란다. 블랙코미디의 신랄함은 남의 집 불구경을 하며 낄낄대는 배덕한 감성만큼 그게 실은 우리 집이라는 섬뜩한 깨우침을 통해 완성된다. 그렇기에 우리 집이 진짜 불타기 전에 추체험할 가상의 재현이 필요하며,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요구되는 코미디다. <SNL KOREA>든 <개그콘서트>든 그래서 정말로 이번 국민의힘 경선을 진지하게 복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필요한 코미디의 거의 모든 것이 그 안에 있다. 염치만 제외하면.
<위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