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술의 대(對)중국 수출 규제 고삐를 바짝 죄는 가운데 미국 거대 기술기업(빅테크) 수장들이 정부의 수출통제 조치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수출을 틀어막는 것보다 미국의 첨단 기술을 널리 퍼뜨려 미국의 영향력을 키우는 방향이 적절하다는 주장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8일(현지 시간) 미 상원 상무위원회에서 ‘미중 AI 경쟁에서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청문회에서 테크계 수장들은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브래드 스미스 마이크로소프트(MS) 사장은 “AI 경쟁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전 세계에서 어떤 기술이 더 널리 채택되는지 여부”라며 “화웨이의 5G 시장 선점에서 우리가 배운 교훈은 먼저 자리를 차지한 자는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화웨이가 5G 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적극적으로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나선 결과라는 의미다. 즉 수준 높은 기술을 얼마나 빠르고 널리 보급할 수 있는지가 AI 경쟁의 중대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게 업계 수장들의 설명이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도 “미국은 아이폰을 가장 원하는 휴대폰으로, 구글을 가장 원하는 검색 엔진으로 만들면서 얻는 영향력이 엄청나다”며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국가에서 미국 기술이 채택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투자를 통해 향후 몇 년간 AI로 인한 사회적 발전이 가속화할 것”이라며 “인프라 투자는 매우 중요하다”고 거듭 밝혔다. 이어 “미국이 AI 혁명이 일어나는 곳일 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모든 혁명이 일어나는 곳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사 수 AMD CEO도 “우리 기술이 다른 세계에서 채택되지 못하면 다른 기술이 등장할 것”이라면서 “다른 나라의 기술은 현재는 덜 발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성숙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테크계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수출통제 조치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앞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중국 내 AI 칩 수요의 가파른 성장을 예상하면서AI 칩의 중국 수출을 금지한 정책에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그는 “우리가 특정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지 않고 완전히 떠난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며 중국 화웨이를 ‘가장 무서운’ 기업이라고 지목했다. 이런 가운데 엔비디아는 미 정부의 강화된 수출 규제 기준에 맞추기 위해 중국으로 수출하는 H20 칩의 저사양 버전을 내놓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통신은 엔비디아가 2개월 이내 H20 칩의 저사양 버전을 출시하기로 했다고 9일 보도했다. 엔비디아는 강화된 기준도 통과할 수 있도록 H20 칩의 메모리 용량을 대폭 줄이는 등 사양을 크게 낮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