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는 사회

2024-09-26

김문기 편집국 부국잠 겸 서귀포지사장

“카드로 주세요.”

최근 제주시내 모 주유소에서 세차하기 위해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자 돌아온 답이다.

종업원의 말로는 6개월 전부터 세차비로 현금을 받지 않고 있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현금이 거부되는 사회가 되고 있다.

스타벅스가 2018년 도입한 ‘현금 없는 매장’도 다른 커피전문점으로 확대되고 있다.

바야흐로 ‘현금’이 반갑지 않은 시대가 도래했다.

필자가 대학을 전담 취재했을 때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16년 전후로 기억된다.

당시 대부분 대학에서 등록금을 현금(계좌이체)으로 받았는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신용카드로도 받아야 한다는 민원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신용카드 사용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필자도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일견 타당하다고 신용카드로도 등록금을 납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취지로 기사를 냈다.

지금은 모르겠는데 당시만 해도 자신이 소속된 기관(단체)에 부정적으로 보이는 기사가 보도될 경우 이유 불문하고 기관장 또는 상급자로부터 핀잔을 들었던 때다.

보도가 나간 날 오전 필자를 본 제주대학교 홍보담당 직원이 할 말이 있다며 필자를 불렀다.

“등록금을 카드로 결재할 경우 학생들은 할부 이자, 대학은 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이는 대기업들의 배를 채워주는 꼴입니다.”

이 직원은 등록금 분할 납부도 가능하기 때문에 카드결제가 꼭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대학이 카드사에 내는 수수료를 장학금으로 학생들에게 돌려주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도 했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등록금 카드납부에 대한 장단점을 분석하는 등 종합적인 취재 후 그에 맞게 기사화 했어야 했다.

제주대는 이후 학생 부담을 줄이기 위해 등록금 분할납부 외에도 카드납부를 도입했다.

언제부턴가 우리사회는 ‘카드 만능 시대’가 됐다.

정부도 현금 거래보다 신용카드 사용을 권장하는 분위기다. 매출에 따른 정확한 과세를 위해 현금 거래보다 편하기 때문이다.

제주도가 ‘현금 없는 버스’ 정책을 시행한다고 한다.

당장 다음달 1일부터 버스를 타려면 교통카드 또는 교통카드 기능이 포함된 신용카드가 있어야 한다.

버스 내 현금함이 철거되고 현금 결제가 불가능해진다. 교통카드가 없으면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계좌이체로 요금을 납부할 수 있지만 내년 1월 1일부터는 이마저도 중단된다.

제주도는 버스 요금으로 현금을 내는 비율이 10% 미만이고 현금 관리 비용 절감 등을 위해 ‘현금 없는 버스’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거스름돈 환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운행지연, 실랑이 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현금보다 카드가 간편하고 편리하며,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금 없는 버스’는 교통카드 사용률이 비교적 낮은 노인층과 어린이들의 이동권을 제한할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장 나이 든 부모와 어린 자녀를 위해 교통카드를 발급받아야 하는 숙제가 주어졌다.

‘현금 없는 사회’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인 흐름이라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소외된 이들은 없어야 한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