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0㎞, 175일 완주 그뒤…미혼의 마흔남 “감흥 없더라”

2025-11-12

김희남(39)씨는 2015년 미국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을 종주했다. 이후 자연에서 걷고 야영하고, 또 이런 경험을 나누는 게 직업이 됐다. PCT는 영화 ‘와일드’의 배경으로,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부근에서 시작해 서부 해안에 자리 잡은 산을 따라 캐나다 국경까지 이어지는 4300㎞ 장거리 트레일이다. 와일드의 실제 주인공 셰릴 스트레이드(57)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그로 인한 상실, 유년 시절부터 이어진 방황을 끝내고자 이 길에 들어선다.

그가 PCT를 가기로 마음먹은 것도 셰릴 스트레이드의 책과 이후 만들어진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 물론 셰릴처럼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거나 방황을 했던 건 아니다. 우연히 영화 포스터를 보고 “나도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길이 도전이었다. 그래서 여정 초반, 길에서 만난 이들에게 “PCT는 나의 프로젝트”라고 했다. 한데 그들은 “그게 너의 과제라고?” 되물었다. 그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걷는 것은 도전이 아니고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길은 4월 16일 시작해 10월 7일까지 꼬박 175일 걸렸다. 15㎏의 배낭을 메고 처음 길을 나설 땐 ‘할 수 있을까’ 했지만, 1주일 걸으니 거짓말처럼 몸이 적응했다. 길 중간에선 시간당 6㎞로 달리듯 하루 40㎞를 걷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화를 부르고 말았다. 건강한 몸만 믿고 무리해 걷다 보니 발목이 어긋난 것이다. 이후 등산 스틱에 의지해 기어가야만 했다. 천신만고 끝에 종점인 캐나다 땅에 발을 디뎠을 때도 끝냈다는 것 말고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다른 이들도 대부분 그렇다고 한다. 처음엔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걷지만 길이 끝나는 지점에선 별다른 감흥은 없다.

PCT를 하면서 내건 목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완주, 그리고 끝까지 기록하자는 것. 평소 꼼꼼한 성격대로 매일 일기를 썼다. 또 고프로 액션캠을 통해 매일 영상 일기를 남겼다. 그것이 지금 하는 일의 토대가 됐다. 다녀와서 2권(한 권은 공저)의 PCT 관련 책을 썼고, 직접 영상을 편집해 인터넷 공간에 공유했다. 어느 순간 장거리 트레일 정보를 제공하는 유튜버가 돼 있었다.

김희남씨가 걸어온 길은 일반적인 길은 아니다. 길을 걷느라 세속적인 것을 놓쳤다. 세는 나이로 마흔, 미혼이고 여자친구도 없다. 직업은 프리랜서로 수입도 들쭉날쭉하다. 대학 졸업 후 안정적인 직장에서 경력을 쌓은 동년배에 비하면 분명 다른 길이다. 하지만 후회한 적도, 자신이 가는 길이 틀렸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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