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금산분리 원칙은 일종의 도그마(비판이나 의심이 허용되지 않는 진리)로 통했다. 금융기관을 소유한 산업자본이 마구잡이로 계열사 투자를 늘리다 나라 경제 전체가 한꺼번에 무너진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의 악몽 때문이다.
하지만 IMF 이후 30여 년이 흐른 지금, 이제는 낡은 규제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우리 경제의 사이즈가 미국·중국·일본 등 전 세계 주요 국가들과 직접 경쟁할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모든 규제는 필요한 시기가 있는데 지금의 금산분리 규제는 대학생에게 중학생 옷을 입혀놓은 격”이라고 지적했다. 산업 전환기마다 금산분리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으면서 성장의 족쇄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금산분리 찬성이냐, 반대냐는 이분법에 갇혀 있을 때가 아니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1일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는 막으면서 투자는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산분리 제도를 도입한 취지를 흔들지 않으면서도 산업계의 요구를 반영한 제도를 설계하자는 뜻이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이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안전장치를 갖춘 완화는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한 데 이어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펀드를 만들어 첨단산업 투자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고 요구하면서 ‘금산분리 완화’ 논란이 불거졌다. 시민단체들은 “재벌 대기업이 금융 계열사를 사금고처럼 이용하는 관행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막을 무너트려서는 안 된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정부 내부에서도 대통령실·기획재정부·산업통상부는 제도 개선에 공감하는 분위기인 반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신중론을 펼치는 등 의견이 갈리고 있다.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위기 당시 IMF가 요구한 핵심 권고 사항이다 보니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는데 제도 도입 취지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 문구 하나하나 그대로 두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의미다.
김 교수는 “이미 인터넷 전문은행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예외 사례를 만든 적이 있지 않느냐”며 산업 환경 변화에 맞춰 제도를 조금씩 바꿔가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정부는 토스·카카오뱅크와 같은 인터넷 전문은행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산업자본에 해당하는 ‘비금융주력자’가 의결권 주식을 34%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기존 금산분리 규정의 보유 한도는 4%에 불과하지만 신산업 활성화를 위해 규정을 대폭 손질한 셈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산업계 요구는 수십 조 원 단위의 투자를 가능하게 할 수단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라며 “금산분리 규정이 산업 경쟁력을 해친다면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별 기업 단위의 채권 발행이나 현금 동원만으로는 투자 규모를 감당할 수 없으니 새로운 자금 동원 수단을 열어달라는 산업계의 요구를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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