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벨상은 남들이 생각 못하는 것을 밝혀내거나, 기존 통념을 뒤엎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장 먼저 걷는 것, 이게 연세대 140년 역사 속에 이어져온 정신입니다."
윤동섭 연세대 총장은 한강 작가(국어국문학과 89학번)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언급하면서 대학 슬로건인 ‘더 퍼스트, 더 베스트’(the First, the Best)를 강조했다. 새로운 도전에 앞장서고, 최고 수준의 성과를 내겠다는 다짐이 담겼다.
실제로 연세대는 지난해 국내 최초로 고성능 양자 컴퓨터를 도입했고, 올해는 박사과정 대학원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주는 파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지난달 25일 총장실에서 만난 윤 총장은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국내 제2, 제3의 노벨상도 연세대에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연세대에 어떤 의미인가.
연세 공동체 전체에 자긍심을 안겨준 일이었다. 수상 소식이 알려진 날 한강 작가와 가족을 제외하고는 내가 축하 전화를 제일 많이 받았을 것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게 연세대의 정신이다. 이런 학풍이 인재를 탄생시켰다. 제2의 한강, 제2의 노벨상을 키워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다음 노벨상은 과학이다. 인공지능(AI)과 바이오, 양자 컴퓨팅을 융합하는 혁신적인 연구 생태계를 캠퍼스에 구축하고 있다. 실제로 노벨상 수상에 상당히 근접한 연구자들이 학교에 있다. 좋은 연구는 융합연구를 할 수 있는 분위기와 공간, 지원이 필수다. 연세대는 메디컬과 바이오가 특히 강한데, 여기에 AI와 양자컴퓨터를 접목하면 세계적인 연구 성과가 탄생할 것이다.

고성능 양자 컴퓨터를 도입한 이유는.
연세 정신 중 하나인 ‘더 퍼스트’에서 찾을 수 있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게 연세 정신이다. 로봇 수술 표준화나 중입자 치료 도입 때도 반대가 많았지만, 최초로 시도해 성공했다. 양자컴퓨터 알고리즘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교수진 10여명을 새로 모셨다. IBM과 협업해 신약 개발 등 실질적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회의적인 시선도 있던데…
양자컴퓨터에서 미국이 100점이라면 우리는 2점밖에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유지·임대 측면에서 비용도 엄청나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국가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대학이 도전해야 한다. 연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다. 우리 대학의 양자컴퓨터는 연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기업, 인재들에게 개방돼 있다. 새로운 시도를 원하는 사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함께 생태계를 만드는 게 우리 역할이다.
도전적인 시도가 많다. 박사과정 전체 장학금 지원도 그렇다.
대학의 사명은 우수 교수를 영입하고 좋은 학생을 키워 최고의 연구 성과를 만들고, 이를 통해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거다. 박사과정 학생들이 연속성을 갖고 연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연구 경쟁력,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2학기부터 이공계는 물론 인문·사회 대학원생에게 정부 장학금 외에 학교에서 별도 장학금을 지원할 방침이다. 기부자들도 가장 관심 갖는 부분이 장학금이다. 기부를 확대해 혜택이 더 많이 돌아가도록 할 계획이다.
15년 만에 등록금 인상도 이뤄졌다.
재정 지원 없이는 학교가 발전할 수 없다는 점을 항상 강조해 왔다. 늘어난 등록금은 모두 학생 교육을 위해 쓰인다. 학생들도 이 점을 이해하고 인상에 동의해줬다. 덕분에 우수한 교수 영입과 좋은 교육 시스템 구축에 더 많은 재원을 투입할 수 있게 됐다.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질수록 교육 수준이 향상되고, 학교뿐 아니라 학생의 실력도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총장이자 의사다. 의정갈등 상황을 어떻게 봤나.
학생들이 고생하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의대생도 한국 의료를 정상화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이제는 누가 잘못했느냐를 따지기보다 한국 의료를 살리는 데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학생들은 수업에 복귀해 공부해야 한다. 제도적 문제는 대한의사협회와 같은 대표 기관들이 정부와 대화하며 풀어가야 한다. 물론 의사·의대생의 부담, 불안도 이해한다. 의사 개인의 직업적 소명과 법적·사회적 책임 사이에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 있고, 이 부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임기 동안 꼭 하고 싶은 일은.
140주년을 맞은 연세대는 이제 '퀀텀 점프'(대도약)를 할 시점이다. 많은 에너지를 흡수한 전자가 더 높은 궤도로 순간 도약하듯, 연세대도 세계적 대학으로 단번에 도약하겠다는 뜻이다. 전 세계의 우수한 학생·연구자가 찾아오는 대학으로 도약할 기틀을 마련하는 게 총장으로서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임기 후엔 연세대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으로 우리 의료계와 교육계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윤동섭 총장=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고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연세대 의대 교수로 부임한 뒤 강남세브란스병원장,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 2월 제20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대한병원협회 회장, 대한외과학회 회장, 한국의학교육협의회 회장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