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 유니폼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언제부터인지 프로야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전철이나 길거리에 응원팀 유니폼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얼마 전 있었던 대학의 봄철 축제에서도 야구 유니폼이 단체복으로 선택됐다. 초록색이 빛나는 야구 단체복은 캠퍼스의 짙어가는 녹음과 어우러져 청춘의 생기와 에너지를 유감없이 분출했다. 야구의 인기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한때 야구는 중년 남성의 전유물이었지만, 최근 프로야구 입장권 구매자의 약 60%가 20~30대일 정도로 양상이 달라졌다. 특히 20대의 비율은 5년 전보다 거의 2배 가까이 늘어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젊은 이미지로 표심 얻기 위해
야구 유니폼 입고 선거운동 벌여
이미지와 실제 모습에서 차이 커
계엄 사과 없어 역효과 생길 수도

야구장에서도 대학 축제에서도 유니폼은 단순한 의상이 아니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구성원 간 일체감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내고 또 고조시킨다. 축제에 참여한 학생들이 야구 유니폼을 선택한 이유도 인기가 많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유니폼을 통해 같은 학교에 속한 존재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고, 스포츠 응원에서 느끼는 활기와 연대감을 축제 현장에 재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야구 유니폼은 1849년 미국 뉴욕의 니커보커스 클럽이 처음으로 통일된 복장을 착용한 것에 그 뿌리를 둔다. 당시 선수들의 복장은 지금과는 아주 달랐다. 푸른색 모직 바지와 흰 플란넬 셔츠를 입고 머리에는 밀짚모자를 착용해 경기복이라기보다는 신사복에 가까운 형태였다. 1860년대 후반에는 승마나 골프 스타일의 바지와 무릎까지 올라오는 스타킹이 유행했다. 당시에는 팀 전체가 동일한 복장을 착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타킹 색깔이 팀을 구분하는 주요 수단이 되었다. 보스턴 레드삭스(Boston Red Sox)와 시카고 화이트삭스(Chicago White Sox) 같은 팀명은 이 스타킹 색깔에서 유래한 것이다.
시대에 따라 유니폼은 변화를 거듭했지만, 항상 그 방향은 팀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팬들에게는 동질감을 선사하는 쪽이었다. 유니폼(uniform)이라는 말은 ‘하나의 형태’라는 뜻의 라틴어(uniformis)에서 유래한 것으로, 개인의 개성보다는 집단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이 유니폼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너무나 익숙한 등번호가 1929년이 돼서야 생겨난 것도 집단 정체성 강조로 번호에 대한 거부감이 컸기 때문이었다. 등번호는 선수 개인을 부각하므로, 단정함과 통일성에 중점을 둔 유니폼의 정신을 훼손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후 1960년대 텔레비전 중계의 확산과 함께 등번호에 더해 선수 이름까지 유니폼에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뉴욕 양키스 같은 팀은 지금도 선수 이름을 유니폼에 붙이지 않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 ‘팀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다’는 철학을 고수하는 것이다.
영어에서 유니폼이라는 말이 오늘날처럼 조직이나 집단의 공식 복장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은 근대 군복의 탄생 이후다. 군대만큼 하나의 형태를 강조하는 집단은 없다. 17세기 이전 유럽의 군대는 대부분 용병으로 구성돼 있었고, 각기 다른 의복과 갑옷을 착용했다. 소속의 구분은 깃발, 문장(紋章), 색깔 띠, 깃털 장식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후 국가 주도로 표준화된 군복이 도입되면서 유니폼의 개념이 만들어졌다. 프랑스의 루이 13세가 최초로 정규군에게 통일된 제식 군복을 지급했고, 1645년 영국 의회군도 붉은색 군복을 도입하며 영국군의 ‘레드코트(Redcoats)’ 전통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유니폼은 소속과 일체감, 계급과 위계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2025년 5월,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야구 유니폼이 등장했다. 어느 정당의 선거운동원들이 야구 유니폼 형태의 빨간 옷을 갖춰 입고 부단히 거리를 뛰어다니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젊은 층 사이에 인기 있는 유니폼의 이미지로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려는 계산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지가 내용과 상반되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뿐이다. 계엄 선포로 파면된 대통령과의 관계를 분명히 끊지 못했으며, 그 국무총리를 하룻밤 사이에 대통령 후보로 만들려다 실패한 막장극을 벌였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야구 유니폼을 입었다. 제대로 된 사과 없이 걸친 젊은 이미지는 우스꽝스럽고 기괴하다. 포장을 뜯지 않아도 내용물이 다르다는 것을 국민은 잘 알고 있다.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