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봉, 서예가·문학평론가

아들 내외가 서울로 떠나는 날이다. 눈물 그렁그렁한 손자를 품으로 넘겨준다. 유아원엘 데려갔는데 울며 떨어지질 않는다며….
두 돌 생일파티를 한 지 두어 달, 아직 말을 잘 못하니 떼쓰고 우는 것으로 의사소통한다. 이별을 알아채 우는 걸까….
손자는 제 엄마 다음으로 나를 잘 따른다. 그간 유아원 등·하원과 하루 서너 시간을 벗해 주는 사람이니 당연하리라. 평소처럼 어르고 품어주니 눈물은 거두었지만, 이전처럼 밝지는 못하다. 유아원엘 두고 돌아오는 기분이 쓸쓸하다. 저 어린것이 엄마와 생이별해야 한다.
며느리가 갑상샘암 진단을 받았다. 서울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 수술과 회복 기간, 방사선치료까지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아이는 엄마 품을 떠나 있어야 한다. 아빠도 열흘 넘게 못 본다.
텅 빈 집에 두 돌쟁이가 주인이 됐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함께 잠을 잔 게 두 번뿐인 할아버지가 낯설겠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작은 가슴이 두려울 것이다. 첫날밤엔 주인 노릇 하느라 바쁘다. 이것저것 장난감을 가져와 자랑하며 조작법을 알려주려는 듯이 애쓴다. 아이가 이별과 선생 노릇 하느라 지쳤는지 9시에 잠이 들었다. 지켜보는 내내 흐뭇한 미소를 만들어 주었었는데, 오늘은 다르다.
10시간, 푹 자고 일어났다. 평소와 다른 아침이었겠다. 두리번거려보지만 보이지 않는 엄마와 아빠, 조금이라도 낯섦을 덜기 위해 우리 집으로 가지 않은 게 잘못한 건 아닌지, 아침을 먹고 할아버지와 노는 시간이 즐겁지만은 않아 보인다.
아들에게서 수술을 마쳤다는 연락이 왔다. 마취에서 예정보다 한 시간 넘게 깨지 않아 마음 졸였다는데 다행이다. 아이는 어떤 텔레파시로 전달받았을까.
다시 밤이 찾아왔다. 자장가도 불러주고, 옛날이야기를 소곤소곤 해주다 보니 잠이 들었다.
새벽 두 시, 심하게 뒤척이는 기척에 잠이 깨었다. 손자는 아토피가 있다. 가려운지 온몸을 긁으며 울기 시작한다. 당황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 스테로이드 연고가 부위마다 다르게 바르라고 메모 돼 있었지만, 함부로 쓸 약이 아니라는 걸 안다. 가려움증이 심하면 쇼크가 올 수도 있기에 먹이는 약도 찾아 둬야 한다.
일단 안고 거실로 나갔다. 침실을 시원하게 에어컨 제습 기능을 눌러뒀다. 가려움증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며 품고 어르노라니 울음이 잦아들었다.
침실로 돌아오니 시원하다. 눕히고 농사일하면서 거칠어진 손바닥으로 살살 쓸어 주었다. 그게 좋은지 가려운 곳으로 내 손을 잡고 그렇게 쓸어달라는 듯 옮겨 놓는다. 얼마나 가려우면 이럴까 싶어 마음이 울컥해진다. 두어 시간 그러다 까무룩 잠들었다. 아토피보다 엄마 아빠의 빈자리가 만들어낸 그리움이 극심한 가려움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내가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옮아가길 바랄밖에, 어린 이 생명을 위해서라도 며느리가 속히 완쾌되길 비는 마음으로 새 아침을 맞으며 세상 사람 모두 건강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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