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우선주의 외치던 '트럼프 관세'의 이면
멕시코·캐나다는 美 최대 교역국… 현지업체도 '끙끙'
글로벌 시장 고립, 제살 깎아먹기 될 수도
산업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혹은 필연적으로 등장한 이슈의 전후사정을 살펴봅니다. 특정 산업 분야의 직‧간접적 이해관계자나 소액주주, 혹은 산업에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들을 위해 데일리안 산업부 기자들이 대신 공부해 쉽게 풀어드립니다.
#포지티브적 해석: 자국 업체까지 힘들어지면 그만두려나?
#네거티브적 해석: 상상도 못한 악법을 만들어낼 지도
요즘 산업계에서 가장 '핫한' 소식을 꼽으라고 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겠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자동차부터 철강, 조선, 배터리 등 제한을 두지 않고 전세계, 그리고 국내 산업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에 대한 한국의 폭발적 관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부터 보인 '전례없는' 정책들 때문입니다. 그는 아주 중요한 정책을 거침없고 충동적으로 시행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있는데요. 취임 전부터 오죽하면 '트럼프 리스크'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쓰여오기도 했죠. 트럼프 리스크의 첫 페이지는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의 관세가 될 예정입니다.
국내에서는 캐나다, 멕시코 관세로 인한 국내 기업들의 피해가 집중조명 되고 있는데요. 이번엔 좀 다른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도, 중국도, 유럽도 아닌 미국 업체들 사이에서도 앓는 소리가 나오고 있어서입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를 주창하며 자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던 그가, 미국 업체들을 힘들게 하다니요. 무슨 소리인가 싶으시죠?
이전에, 우선 트럼프가 왜 관세 정책을 꺼내 들었는지부터 먼저 살펴볼까요. 캐나다와 멕시코는 사실 미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최우방 동맹국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 이유로 멕시코와 캐나다가 '불법 마약 유입 방지에 노력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그렇다고 최대 교역국에 관세를 무려 25%씩이나 때리다니, 어딘가 이상하죠.
캐나다와 멕시코, 그리고 미국의 관계는 적어도 제조업에 있어선 떼려야 뗄수 없는데요. 미국으로 수출시 관세가 없고,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 인건비는 미국의 10분의 1 수준이니, 한국 업체들 뿐 아니라 일본, 유럽 등 글로벌 업체들도 미국에서의 판매를 위해 캐나다, 멕시코에 투자를 해온겁니다.
이 방법을 통해 글로벌 업체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미국 내 시장 규모를 키우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반면 미국 현지 업체들의 경쟁력은 나빠져만 갔습니다. 미국 현지 업체들은 과거부터 미국에서 대부분의 물량을 생산해온 탓에 높은 인건비와 노조의 압박을 견뎌야했고, 결국 판매가격을 올릴 수 밖에 없었거든요. 해외 업체들은 옆동네에서 싸게 만들어 들여오니 오히려 미국에 뿌리를 둔 업체들이 불리한 상황을 맞게 된 겁니다.
미국에서 단시간 안에 훌쩍 성장한 현대차그룹도 멕시코에서 저렴하게 생산한 부품을 미국에서 조립만하는 방식을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전세계 자동차 판매 1위 업체인 토요타도 멕시코에 수십년 전 세운 대규모 제조공장 덕에 수월하게 미국 시장에서 물량 조달을 할 수 있었죠.
제조업은 과거부터 미국의 경제를 이끌어왔고, 그 중심에는 자동차가 있는데요. 포드, GM, 스텔란티스, 크라이슬러… 우리가 모두 아는 그 유명 브랜드들 대부분이 미국 태생이잖아요. 과거엔 손 안 대도 알아서 돈 잘 벌던 우리 업체가, 심지어 자국 시장에서 해외 업체에 밀려 설 자리를 잃은 상황에 처한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과제 중 하나가 '제조업 살리기'인 이유도 여기에 있죠.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전 공약에서부터 자국민, 자국업체를 열렬히 강조해온 이유, 이제는 이해가 가시죠? 게다가 미국은 과거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관세'로만 재정을 운영했던 역사가 있는데요. 지금 미국의 평균 세금이 25% 수준인데, 관세를 많이 걷을수록 자국민 세금을 경감해줄 수 있으니, 미국 국민들의 열렬한 환호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닙니다.
결국 갑작스런 관세 정책의 내면에는 대외적으로 내건 '불법 마약 유입 방지' 보다 자국 제조업의 부흥과 재정 확보가 깔려있는 듯 하죠. 이 모든게 가능할 수 있는 건 전세계 경제와 산업, 정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강력한 위상일 겁니다.
그런데, 해외 업체가 아니라 미국 현지 업체들의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자국 업체 보호하자고 벌인 일인데, 예상하지 못했던 시나리오가 등장한 거죠. 어떻게 된 일일까요.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 포드의 짐 팔리 최고경영자(CEO)는 11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 자동차 업계에 전례 없는 타격을 줄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했습니다. 팔리 CEO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강하게 만들고, 미국의 자동차 생산을 늘리겠다고 말해왔다"며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큰 비용과 많은 혼란"이라고 꼬집었죠.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볼 때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관세가 부과되면 미 자동차 업계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며 "솔직히 멕시코와 캐나다 관세가 적용되지 않는 150만~200만 대의 차량을 미국으로 들여오는 한국과 일본, 유럽 기업들에게 무료로 규제를 제공한다. 이는 해당 기업들에게 가장 큰 횡재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미국의 주요 자동차 업체인 GM(제너럴모터스)도 "관세 부과 시 비용 증가의 절반 정도는 회피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자동차 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한 건 이게 아니었을텐데요. 미국 업체들에게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결국, 현지 자동차 업체들 조차도 미국 내에서 자동차 제조에 필요한 모든 것을 100% 생산하지 않는다는 의미인 듯 합니다.
이들 역시도 미국 내 높은 인건비를 피하기 위해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부품이나 원자재를 일부 수급해왔거든요. 가격 경쟁력을 가져가면서 수익성을 지키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고요. 결국 관세가 오르면 미국 현지업체고, 해외업체고 구분없이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는 논리입니다.
어쩐지 ‘이러다 다 죽어!’ 라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명대사가 떠오릅니다. 밑도 끝도 없는 '자국우선주의'의 부작용이 벌써부터 수면 위로 드러나는 듯 한데요. 관세로 인한 비용 부담을 해외업체만 골라서 떠넘길 수 있는 게 아니고서야, 결국 미국 시장 내 모든 업체들은 다같이 수익 악화를 감당해야할 겁니다. 물론 언제나 상상을 초월했던 그가 자국 업체만 쏙 골라 피해를 경감해주는 요상한 지원책을 내놓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관세정책은 아직 일부에 불과한데요. 미국의 내연기관차를 부흥시키고, 전기차 지원을 축소 및 폐지하겠다던 그의 공약도 이번과 같은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보입니다. 내연기관 시대 잘 나가던 미국 전통 자동차 업체들을 감싸안으려 전기차 산업 지원 자체를 막아버렸다가는 결국 테슬라, 리비안과 같은 미국 전기차 업체의 피해도 함께 불러올테니까요.
과연 권력만으로 모든 룰을 무시하고, 시장을 독점하려는 그의 계획은 실현 가능할까요.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선진 시장이었던 미국을 조만간 ’가장 고립된 시장’으로 평가하게 될 지도 모르겠네요.. 앞으로의 4년이 보다 상식적이길 바래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