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저고리.
흔히 ‘한복’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복식이다. 저고리와 치마는 누구나 쉽게 떠올릴 만한 조합이고, 특히 상의인 저고리는 그 변천사 자체가 하나의 복식사가 될 만큼 변화무쌍한 발전 양상을 보였다.
한복 패션 디자이너 김혜순이 쓴 이 책, 《아름다운 우리 저고리》는 ‘저고리’에 집중하여 마치 화보집처럼 각종 저고리를 조명한 책이다. 지은이는 ‘우리 민족의 문화와 사상, 미감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표적인 복식이 바로 저고리’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지은이는 ‘저고리 600년 변천사’라는 전시회를 3년에 걸쳐 기획, 2003년 선보인 바 있다. 이때 복원하고 재현한 70여 점의 저고리를 이 책에 담아, 저고리에 담긴 당시의 시대상과 생활습관, 문화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한자어로는 ‘적고리(赤古里)’라고 표기하는 저고리는 포(袍)와 견주어 길이가 짧은 윗도리를 뜻한다. ‘적고리’라는 표현은 세종 때 처음 쓰였으며, 태종의 비 원경왕후의 《선전의(選奠儀)》에 치마를 뜻하는 ‘쳐마(赤亇)’라는 말과 함께 등장한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저고리의 종류도 정말 많다. 봉제기법에 따라 안감을 넣은 겹저고리와 한 겹으로 만든 홑저고리, 솜을 넣은 솜저고리와 누벼 만든 누비저고리, 바느질 뒤 시접(속으로 접혀 들어간 옷 솔기의 한 부분)을 깎아 낸 깨끼저고리 등으로 나뉜다.
색에 따라서는 깃이나 고름, 곁마기(저고리 겨드랑이 안쪽에 자줏빛으로 댄 헝겊), 끝동에 다른 색의 옷감을 댄 삼회장저고리, 깃이나 고름ㆍ끝동에만 다른 천을 쓴 반회장저고리, 아무런 장식 천을 쓰지 않은 민저고리도 있다. 특히 삼회장저고리는 아무나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라 신분이 높은 사람만 입을 수 있었고, 나이가 들면 입지 않아 젊은 사람들이 입었다.
(p.107)
(사진) 18세기 삼회장저고리
소매 끝부분에 흰색의 천을 대었는데 이것을 거들지라고 한다. 예복용이나 소매 끝의 더러움을 방지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한지를 흰색의 천으로 감싸서 만들어 대었다.
19세기로 갈수록 저고리는 짧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왕실 여성 저고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순조의 3녀인 덕온공주가 9살 때 입었던 삼회장저고리를 보면 저고리 길이가 상당히 짧아져 진동 아랫부분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p.161) 사진
조선 초기에는 허리 밑으로 내려오는 긴 저고리와 짧은 저고리가 공존했고, 이때 긴 저고리의 형태가 당의와 비슷하다. 시간이 지나며 저고리는 좀 더 길어지고 도련의 형태는 더욱 곡선화되어 양 끝이 휘어져서 당의가 되었다.
(p.208)
그렇다면 당의에 ‘唐’ 자를 붙인 까닭은 무엇일까? 당나라 여인들의 옷을 본받아 생겨났다는 의견이 있으나, 저고리 형태의 변화에서 알 수 있듯 중국에서 비롯된 옷이라 붙여진 이름은 아닌 듯싶다. 아름답고 세련됐다는 의미에서 당(唐)이라는 접두어를 붙였다는 설에 오히려 수긍이 간다. 단조로운 저고리에 이색을 첨가하여 색채 대비를 이루고 있는 삼회장저고리나 곡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당의 모두 너무나 아름답고 소중한 우리 저고리이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우리가 무심코 보고 지나쳤던 저고리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사진을 담고 있다. 저고리의 변천사에서 보이는 우리문화의 옛 모습, 미적 감각, 사회적 인식 등은 굳이 저고리에 관한 책을 읽지 않으면 알기 힘든 것들이라 더욱 값지다.
오늘날 무수히 많은 양식의 윗옷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한국적 미의식의 원형 가운데 하나가 ‘저고리’가 아닐까 싶다. 저고리를 향한 지은이의 꺼지지 않은 열정처럼, 우리 저고리가 오늘날에도 계속 사랑받으며 인생의 좋은 날 많이 입는 옷으로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