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강경한 이민 정책을 펼치며 사실상 모든 난민 입국을 거부해온 가운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들이 12일(현지시간) 난민 자격으로 입국했다.
49명의 ‘아프리카너’(Afrikaners·17세기 남아공에 이주한 네덜란드 정착민 후손)는 미국 정부가 비용을 부담한 전세기로 이날 워싱턴 DC의 덜레스 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크리스토퍼 랜도 국무부 부장관, 트로이 에드거 국토안보부 부장관이 직접 공항까지 나와 자신 및 자신들의 가족도 박해 등을 피해서 이민 온 사람이라면서 이들을 환영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은 보도했다.
랜도 부장관은 “여러분들이 성조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쁘다”라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 대부분은 농부가 아니냐”라고 반문하면서 “여러분이 좋은 씨앗이 있다면, 그것을 외국 땅에 심어도 씨앗은 꽃을 피울 것이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꽃 피울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남아공 백인이 난민으로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 차별 정책) 폐지 이후 토지 개혁 요구 차원에서 나온 남아공의 토지 관련 법을 비판하면서 지난 2월 남아공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관련 피해자들을 난민으로 수용하기로 했다.
이날 입국한 남아공의 아프리카너에 3개월만에 신속히 난민 자격을 부여해 이들을 입국시켰다. NYT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전에 걸린 난민 심사는 평균 18~24개월이 소요됐다고 전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미국에 체류하도록 했던 중남미 국가 국민의 체류 허가에 대한 취소도 추진하는 등 강경한 이민 정책을 추진한 트럼프 대통령이 남아공 백인에는 역차별로 박해당하고 있다면서 난민 지위를 부여한 것을 두고 미국 내에서는 ‘이중 잣대’라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은 토지 법안은 공익을 위해 사적으로 소유한 토지를 보상 없이 몰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이를 위해서는 사법 심사 절차를 걸쳐 정당성을 입증한 후에만 가능하다고 NYT는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진행된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남아공 백인을 난민으로 수용한 것과 관련, “우리는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라면서 (남아공) 농민들이 살해되고 있으며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가 벌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해당 난민들이 백인인 것에 대해서는 “그들이 백인인 것은 우연”이라면서 “그들이 백인인지 흑인인지는 내게 아무 차이가 없다. 백인 농부들이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고 있으며 (그들의) 땅이 남아공에서 몰수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민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도 남아공 상황과 관련, “이것은 인종에 기반한 박해”라면서 “난민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이유를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라고 주장했다고 NYT 등이 보도했다.
트럼프의 ‘제노사이드’ 주장과 달리 2020년 4월부터 2024년 3월까지 남아공 농장에서 살해된 225명의 희생자 가운데 101명은 농장에 고용돼 일하는 전현직 노동자로 대부분은 흑인이었으며, 53명은 백인 농부였다고 NYT는 지적했다.
남아공은 미국의 아프리카너 난민 수용에 반발했다. 크리스핀 피리 남아공 외무부 대변인은 “남아공 국민을 ‘난민’이라는 명목으로 미국에 재정착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며남아공의 헌법적 민주주의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유감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