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개봉한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은 한국전쟁 당시 강원도 산속 마을에 추락한 미 전투기 조종사, 병력에서 이탈한 국군과 인민군이 모이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초반엔 긴장감이 극에 달했지만 이들은 마을 사람들의 평화로운 모습에 점차 동화돼간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동막골 촌장과 인민군 장교의 대화다. 장교는 “고함 한 번 지르디 않고, 부락민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 뭐요?”라고 묻는다. 촌장은 “뭐를 마이 맥여야지, 뭐”라고 답한다.
당시엔 영화 분위기 상 웃고 넘어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단순한 대답엔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중요한 진리가 담겨 있음을 느끼게 됐다.
의식주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필수 3요소다. 특히 '식(食)'은 인간의 기본적 생존은 물론 삶의 질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 요소다. 적어도 먹는 문제에서만큼은 어려움이 없다는 점이 동막골의 평화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기업 환경에서 '식(食)'은 수익과 같다. 공공이나 비영리단체를 제외한 거의 모든 기업의 목적은 영리 추구다. 수익이 있어야 기업이 성장하고 직원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기업 활동을 통한 사회적 기여나 국가 위상 제고는 그 다음 일이다.
정부 정책의 성공은 여기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정책의 목적 달성과 기업 수익 창출 방안을 동시에 고민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사례가 '민간투자형 소프트웨어(민투형 SW) 사업'이다. 민투형 SW 사업은 대기업참여제한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20년 말 도입됐다. 공공은 부족한 사업 예산을 충당할 수 있고, 민간 기업의 혁신 기술로 공공 서비스를 혁신할 수 있어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5년간 추진된 사업은 단 2건에 그친다. 민간이 사업비 50% 이상, 심지어 전액을 내며 참여하지만 수익을 창출할 방법이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구체적 방향 제시 없이 '사업을 통해 수익은 재량껏 확보하라'는 식으로는 기업 호응을 얻기가 어려웠다.
비슷한 상황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국가AI컴퓨팅센터 사업에서다. 사업 참여 의향서를 제출한 곳만 100곳이 넘지만 본 입찰은 두 차례 유찰되며 사업 추진이 불투명해졌다.
낮은 자율성과 과도한 책임 때문에 사업 참여를 꺼리는 곳도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외면한 가장 큰 이유는 수익 확보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이들은 큰 돈을 투자해 센터를 지어도 이를 받쳐줄 수요가 있을지 우려한다.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는 사업인 만큼, 중소기업 등에 GPU를 계획보다 저렴하게 공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정부는 공모 지침을 변경해 사업을 재공고하기로 하고 업계 의견수렴을 시작했다. 재공고 시에는 수익성에 대한 우려를 떨치도록 하는 데 가장 큰 주안점을 둬야 한다. 상징성이 큰 사업인 만큼 적어도 손실은 보지 않겠다는 확신만 심어준다면 기업도 외면하기 어렵다.
정책 성공의 열쇠는 단순하면서도 간단하다. 동막골 촌장의 리더십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안호천 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