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조선희가 11명의 아티스트들과 뭉친다. 총 12명이 ‘집’이란 장소에 대한 저마다 세계를 작품으로 승화하고, 이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50여년 된 건물에 모아 전시하는 색다른 전시회 ‘지PPP(Place, People, Play)’로 대중을 만난다. 정숙한 전시가 아니다, 오히려 뛰어놀고 체험하며 스며들길 바라는 발칙한 전시다.
“이 건물이 곧 리뉴얼에 들어가요. 50년간 여러 사람이 드나들고 지냈던 시간이 담긴 곳인데, 그 오래된 시간이 사라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라지는 것과 현재를 살아가는 아티스트 12명의 에너지를 합쳐보자고 해서 처음 이 전시를 기획했어요.”
이번 전시에는 조선희 작가를 비롯해, 강숙, 조한재, 안형준, 모승민, 이승호, 김마저, 유승종, 조병규, 허병욱, 최민욱, 박예지, 양평기절호떡 작가 등 12명이 서로 세계를 공유한다. 건축가이자 시인인 조병규 작가가 이 건물의 리뉴얼을 담당하게 되면서 조선희 작가와 함께 의기투합해,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스포츠경향은 18일 ‘지PPP(Place, People, Play)’에 참여한 조선희, 조병규, 강숙 작가 세 사람을 만나 전시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12명이 어울린 컬래버레이션 전시, 변화를 쏘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직종의 아티스트들이 ‘집’이란 주제를 두고 저마다 상상력과 느낌을 더해 두 달여간 작업 끝에 완성됐다. 여타 전시회가 기존 완성된 작품을 공간에 맞춰 두는 것과 달리, 이번 전시는 기획과 동시에 작가들이 영감을 받아 작업에 들어갔다고.
“저와 조병규 작가가 기획한 뒤 각자 아는 작가들을 투입시켜 12명을 꾸렸어요. 솔직히 처음엔 큰 기대를 하진 않았어요. 뭔가 부산스럽다는 느낌 때문이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들 진지하게 임하고 서로 에너지를 주고 받으며 작업한다는 게 흥미롭더라고요. 또 다른 작가들이 작품을 계속 다듬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재밌었고요. 쉽게 시작한 기획이었는데 각각의 세계가 모여 또 하나의 우주(건물)로 완성된다는 게 매력적이었고, 전시 전후 작가들도 각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요.”(조선희)
전시를 위한 두달여 노력과 과정이 작가로서 변화를 줬다고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거창하게 얘기하면 이 전시로 인해 세상을 바꿨다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에겐 이미 변화가 생겼고, 이 전시를 와서 감상하는 사람들에게도 분명 생길 거예요. 실제로 전시 오픈 때 6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왔는데, 많은 이가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저 역시도 작품에 시간이 담긴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50여년의 시간이 담긴 이 건물이 사라진다는 게 아쉬워서 작업 기간 내내 여기서 밤을 샜거든요. 그러면서 시간성을 캔들로 녹여내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 자체가 작가로서도 제겐 큰 의미가 되더라고요. 그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고요.”(강숙)
전시 기획과 건물 리뉴얼을 담당한 조병규 작가에게도 이 전시는 남다른 의미였다.
“처음 이 건물을 마주했을 때 영동대로 끝이라 대로변임에도 소외되고 황폐화된 느낌이 있더라고요. 이 대로를 건너는 차들이 심한 교통체증에 ‘나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횃불 시위를 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이 건물에게 외로움을 걷어내고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고 싶었죠. 전 건축 설계를 할 때 설계도 대신 시를 써서 구상을 하곤 하는데, ‘영동대로 북단 끝’이란 시로 이 건물의 이미지를 구상했어요. 그 시를 쓴 원고지를 1000장 넘게 이 건물 벽에 붙이면서 어느 새 제 방처럼 느껴졌고요. 자식을 마주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조병규)
■“‘지PPP’에선 자유롭게 즐기세요”
정숙하고 깔끔한 전시의 전형성을 탈피한 것도 이번 전시의 눈여겨볼 지점이다.
“사람들은 전시장이라고 하면 완벽하고 깔끔하게 갖춰진 곳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소양을 배우고 격식을 갖춰야할 것 같은 공간. 하지만 이렇게 황폐화된 공간에서 전시를 한다면 이 예술은 누구라도 즐길 수 있는 게 돼요. 사실 예술은 결핍 있는 사람들이 소구하는 문화거든요. 그런 걸 느낄 수 있는 장소죠.”(조병규)
“한번은 지나가던 가족이 호떡을 사먹다가 이 전시장을 지나는 거예요. 제가 들어오라고 했는데, 조금 주저하더라고요. 아들 둘을 둔 부부였는데, 처음엔 쭈뼛쭈뼛 보더니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가 2시간이나 즐기면서 보더라고요. 이때까지 본 전시 중 가장 생동감 있고 행복했던 경험이었다고 하면서요. 전시회에 가면 늘 ‘조용히 해라’ ‘사진 찍지 마라’라고 하는데, 이 전시회는 자유로워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니 저도 늘 ‘관람하러 오세요’가 아닌 ‘놀러오세요’라고 말하곤 하거든요.”(조선희)
“게다가 콘셉트가 전혀 다른 12명의 아티스트 작품들을 한 공간 안에서 다 볼 수 있다는 게 재밌는 거죠. 당번인 작가들이 남아서 설명도 해주는데, 다른 작가의 작품까지도 완벽하게 공부해서 모더레이팅 해주거든요. 그걸 듣는 사람들이 작품 앞에 서 있고 교감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전시라고 생각해요. 극장에서 영화 관람하듯 즐거운 마음으로 오면 됩니다.”(강숙)
이번 전시는 서울시 성동구 동일로 79 곧 리뉴얼 되는 낡은 건물 지하부터 3층에 걸쳐 펼쳐진다. 사진작가, 건축가, 화가, 디자이너 등이 삶에 대한 해석과 창의적 표현을 더해 작품을 전시하고 관람객의 온기를 채워 완성하는 구조다.
이뿐만 아니라 아티스트들과 직접 소통하는 자리도 마련한다. 오는 30일 오후 3시부터 전시장 지하에서 ‘지PPP’ 전시회에 참여한 아티스트 12명이 모두 모여 선착순 100명 관람객들과 서로의 세계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며 탐구하는 ‘지PPP 아티스트 토크’ 시간을 갖는다. 작품에 관한 심도 있는 대화는 물론 관객들과 아티스트 사이 서로 세계를 재발견하는 교감의 장이 될 전망이다. ‘지PPP 아티스트 토크’ 신청은 (https://forms.gle/ZKHSXV8qY9BSbgiR6)서 가능하다.
한편 삶과 장소에 대해 반추하는 ‘지PPP(Place, People, Play)’는 오는 30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