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서클, 혼돈에 빠지다

2025-09-17

1930년 8월 어느 날, 안색이 창백하고 왜소한 체격의 한 청년이 카페로 들어서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와 조용히 앉았다. 긴장감이 흘렀다. 청년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가 꿈꾸는 논리체계는 불가능합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좌중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오직 한 중년의 신사만이 일어나 청년을 향해 손뼉을 쳤다.

청년은 바로 쿠르트 괴델(1906~1978·사진)이었으며, 카페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한 철학자와 과학자의 모임인 비엔나 서클의 아지트였다. 이날은 열흘 뒤 있을 쾨니히스베르크 학회의 사전모임이었다. 괴델은 이곳에서 역사적인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하여 비엔나 서클을 좌절시키고 열흘 뒤엔 학계를 혼돈에 빠뜨린다.

사정은 이랬다. 비엔나 서클은 과학의 논리적 분석법을 철학에 적용하려고 애썼다. 그들은 검증 불가능한 명제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당시 학계의 지배적 철학이었던 힐베르트 프로그램을 지지했는데, 그것은 모든 명제는 참이면서 동시에 거짓이 될 수 없는 논리체계를 완벽하게 세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괴델이 이를 뒤집고 “어떤 광범위한 약속 체계를 만들더라도 그 안에서 증명할 수도, 반증할 수도 없는 명제가 항상 존재한다”라는 사실을 보였으니, 비엔나 서클의 꿈과 힐베르트 프로그램이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카페에서 괴델에게 박수를 보낸 인물은 비엔나 서클을 이끌던 모리츠 슐리크였다. 그는 괴델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었지만, 괴델을 무척 아꼈다. 슐리크는 1936년에 학교 계단에서 나치 추종자에게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괴델은 평생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괴델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카오스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그래도 괴델은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갔다. “불완전함은 혼돈이 아닙니다.” 그렇다. 불완전함 속에는 진정한 아름다움과 깊은 경외심이 고요히 흐른다.

이우영 고등과학원 HCMC 석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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