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겠다”던 애플이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애플이 음성비서 시리에 자사 인공지능(AI) 서비스 ‘애플 인텔리전스’를 통합하겠다고 발표한 지 벌써 9개월이 지났다.
발표 당시 여러 매체는 같은 해 10월 배포될 iOS 18.1에 애플 인텔리전스가 통합된 시리(이하 ‘AI 시리’)가 탑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애플은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애플 대변인 재클린 로이는 7일(현지시각) 팟캐스트 데어링 파이어볼(Daring Fireball)을 통해 “더 개인화된 시리 기능을 제공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며 “(애플 인텔리전스 통합) 기능이 내년에 출시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에 애플 소식을 다루는 전문가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실제로 보지 못한 기능은 존재하는지조차 보증할 수 없다”
12일 데어링 파이어볼 운영자 존 그루버는 애플이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대신 기자를 초청해 개발 상황을 실제로 보여줘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AI 시리가 작동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이상 실제로 이 기능이 존재하는지조차 보증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일반적으로 새로운 기능의 완성도는 4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는 담당자가 매체 앞에서 직접 시연하는 단계다. 두 번째는 외부인이 회사의 통제 아래 제한된 시간 동안 기능을 직접 사용해 보는 단계다. 세 번째는 일부 사용자를 대상으로 베타 버전을 출시하는 단계다. 네 번째는 일반 사용자가 써보거나 구매할 수 있도록 정식 출시하는 단계다.
그루버는 애플이 작년 WWDC에서 선보인 AI 시리의 완성도는 0단계였다고 지적했다. 직접 시연하기는커녕 콘셉트 영상만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같은 해 9월 아이폰 16 시리즈 발표 현장에서도 AI 시리를 시연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후 애플은 아이폰 16으로 AI 시리를 사용하는 모습이 담긴 광고도 한동안 내보냈다. 그러나 이달 유튜브 채널에서 관련 영상을 조용히 삭제했다.
그루버는 “신기능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출시 일정을 성급하게 약속하고 광고까지 송출한 데에는 높은 결정권이 필요하다”며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이 연관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스티브 잡스의 문제 대응 방침처럼 팀 쿡이 직접 나서야”
애플 분석가 밍치궈는 14일 자신의 X에서 “애플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혹평했다. 그는 먼저 “AI 서비스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하고 이사회와 주주들의 압박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개발이 지연됐다는 소식을 공식 채널로 알리지 않고 일부 매체를 통해 대신 전한 건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밍치궈는 팀 쿡이 애플 전 CEO 스티브 잡스처럼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0년 아이폰4가 출시됐을 때, 제품 테두리를 손으로 감싸면 수신 감도가 떨어지는 ‘데스 그립(Death Grip)’ 현상이 발생했다. 일명 ‘안테나 게이트’로 알려진 사건이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고객 메일에 직접 답변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애플은 AI 시리 개발이 지연된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AI의 정확도가 기대보다 낮아 개선 중일 가능성이 높다.
테크레이더는 지난 1월 “애플 인텔리전스의 알림 요약 기능을 몇 달째 써 봤지만 좋은 점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혹평했다. 매체는 애플 인텔리전스가 뉴스를 엉터리로 요약해 화제에 오른 적도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애플은 1월 배포된 iOS 18.3 베타 버전부터 뉴스와 엔터테인먼트 앱의 알림 요약 기능을 잠정 중단했다.
지난 2일 블룸버그는 “iOS 18 출시에 맞춰 애플 인텔리전스를 합치려면 기존 시리의 시스템을 통합할 시간이 부족했다”며 소프트웨어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블룸버그는 이어 지난 8일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테스트 중 기능이 오작동하거나 광고한 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면서 “예상대로 개발이 순조롭지 않다”고 전했다.

애플은 언제 AI 시리를 출시할 수 있을까. 애플은 데어링 파이어볼에서 “내년 출시로 예상한다”고 언급한 내용 외, 공식 발언을 아끼고 있다.
최근 애플 웹사이트에는 AI 시리 기능 소개 부분에 새로운 면책 조항이 추가됐다. 여기에는 ‘관련 기능은 현재 개발 중이며 추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제공될 예정’이라고 명시됐다. 구체적인 일정은 써 있지 않다.
존 그루버는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시기는 개발자조차 모른다”며, “최소한 3단계(베타 버전 출시)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야 출시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AI 시리 개발 지연에 따른 영향은 벌써부터 가시화되고 있다. 13일 모건스탠리 분석가 에릭 우드링은 AI 시리 지연이 2026년까지 아이폰 교체 주기에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며 애플 주가 목표치를 275달러에서 252달러로 하향 조정했다. 그는 “아이폰 16을 구매하지 않은 기존 사용자의 절반 정도가 AI 시리 지연으로 기존 기기를 계속 사용한다”고 평가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병찬 기자>bqudcks@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