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인구감소·고령화로 인한 농업 노동력 감소 대책으로 농업용 로봇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적극적인 정책 지원과 투자로 국내 기술은 세계적 수준으로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현장에선 체감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앞서가는 기술과 달리 관련 제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어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제9차 농업기계화 기본계획(2022∼2026년)’을 통해 자율주행·인공지능(AI) 등이 탑재된 농업용 로봇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2026년까지 자율주행과 농작업이 동시에 가능한 ‘레벨4’ 수준의 농업용 로봇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이에 발맞춰 농촌진흥청도 올해 ‘농업로봇과’를 신설하며 연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농업·농촌 인력 감소에 대응하고 생산성을 제고한다는 취지다.
이같은 노력으로 국내 기술 수준은 선진국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농업용 로봇의 민간 보급은 매우 더딘 실정이다. 일각에선 농가의 높은 구입비 부담을 이유로 꼽는다. 정부는 농가의 영농 비용을 낮춰주고자 농기계를 구입할 때 융자 지원, 부가가치세 면제 또는 환급 등의 특례를 제공하는 반면 일부 농업용 로봇은 농기계로 인정받지 못해 혜택에서 제외되고 있다. 이충근 농진청 농업로봇과장은 “일부 농업용 로봇은 농작업을 수행함에도 농기계로 정의되지 않아 부가가치세 영세율 같은 특례를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특례 사각지대에 놓인 대표적인 사례가 자율주행 조향키트다. 일반 트랙터·이앙기 등이 자율주행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탈부착형 기계다. 기존 농기계를 활용할 수 있는 데다 완제품보다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 민간 보급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성이 충분해 소규모 스타트업 벤처기업부터 대형 업체까지 관련 제품을 출시하고 있지만 보급은 원활치 않다.
정부 지원을 받아 AI가 탑재된 자율주행 조향키트를 개발·판매하는 A사 관계자는 “농가 문의가 많은데 실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적다”면서 “현행 규정상 조향키트는 농기계로 인정받지 못해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유사 제품을 개발·판매하는 중견 농기계업체 B사 관계자도 “현장 의견 등을 받아 관계기관과 정부 등에 농기계 인정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질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농업용 로봇의 개념을 좁게 보는 탓에 지원 정책과 제도가 엇박자를 타는 모양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특례를 받으려면 ‘농업기계화 촉진법’ 등에 따라 해당 제품이 농기계로 인정받아야 한다”면서 “자율주행 조향키트는 농기계가 아니라 부품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농업용 로봇이 활성화하려면 경지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는 제언도 뒤따른다.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우리나라 밭은 경지가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은데, 이런 밭에 자율주행 농기계가 도입되면 사고 발생률이 높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력 양성도 숙제다. 이 과장은 “중장기적으로 전문 연구·인력을 확보하고 현장과 밀접한 연구 과정이 개설돼야 한다”고 했다.
[용어설명] 농업용 로봇
정보통신기술(ICT)·인공지능(AI) 등을 탑재해 농작업을 무인화·자동화·자율화한 농기계를 의미한다. 자동화 범위에 따라 자율주행 단계가 레벨1∼4로 나뉜다. 레벨1은 직진 자동 주행만 가능하고 레벨4는 무인 완전자율주행과 농작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단계다.
지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