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이 온통 인공지능(AI) 얘기다. AI가 뭔지 몰라도 AI 열차에 동승하지 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바둑이 알파고에 꺾인 지 어언 10년, AI의 첫 정복지인 바둑은 반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바둑기사들은 무소불위의 지배자 AI를 향해 조용히 반란을 꿈꾼다. 바로 ‘인간의 바둑’을 두자는 것이다.
AI 이전의 정석들은 다 스토리가 있었다. ‘기타니 정석’이나 ‘이창호 정석’처럼 처음 사용한 기사의 이름이 붙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과 더불어 켜켜이 쌓인 정석이 수만개였고 정석 암기는 바둑지망생들의 필수코스였다. 이제 그 정석들은 다 폐기됐다. 대신 AI 정석이 바둑판을 차지했다.
‘바둑 AI 시대’ 착잡한 바둑계
우주와 같은 변화 암기 불가능
AI 이해 애쓰는 게 인간의 바둑

AI가 “이건 정석이다”하고 내놓는 것은 아니다. AI는 모든 수에 점수를 매긴다. 가장 점수가 높은 수는 푸른 빛으로 깜박거린다. 이곳이 바로 ‘블루 스폿’인데 바둑기사들은 이 매혹의 푸른 빛에서 기계의 영혼을 느낀다고 한다.
AI 정석은 단순하고 간결하다. 그러나 잠깐 수순을 비틀면 어렵고 복잡한 변화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주변의 돌 하나만 바뀌어도 AI는 예민하게 반응한다. 바둑기사들은 이 수순을 더듬으며 AI의 의중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AI가 바둑을 무엇으로 보는지, 또 AI가 생각하는 행마의 요체는 무엇인지 그걸 알아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바둑기사들이 AI 치하에서 생존하려면 매일 수도승처럼 고독하게 이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 AI를 향해 끝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개개인의 재능에 따라 성과는 천차만별이다. AI가 실력 평준화를 이룬다는 얘기는 거짓말에 가깝다. 오히려 차이를 벌인다. 우선 기억력에서 차이가 벌어진다.
소설가 장강명이 쓴 『먼저 온 미래』는 29명의 바둑기사를 인터뷰하며 소설 등 문학의 미래를 점검한 리포트다. AI 이후 프로기사들이 느끼는 슬픔·체념·고통·상실감 등이 그대로 느껴진다.
“슬퍼하면서 공부한다”는 조혜연 9단, “하염없이 걸었다”는 박정상 9단, “집에서 혼자 울었다”는 하호정 4단. 물론 “바둑이 더 좋아졌다”는 이희성 9단도 있다.
그들은 AI에 점령당한 현실은 인정하면서도 바둑의 살길은 인간의 바둑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주류·잡초류·지하철바둑 같은 인간의 기풍이 건재하고 눈빛·살색·감정이 그대로 전달되는 인간의 바둑 말이다.
그러나 AI와의 일치율이 승부를 좌우하는 시대에 그런 인간의 바둑이 가능할까. AI 공부는 끝없는 기억을 요구한다. AI의 창고는 우주만 해서 그걸 다 외울 수는 없다. 그러나 자칫 어떤 변화를 암기하지 않고 방치했다가 바둑판에서 딱 마주치면 횡액을 당한다. 신진서 9단 같은 최고수도 상대의 유인에 걸려 낯선 길로 들어섰다가 패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전설적 고수였던 일본의 사카다 에이오 9단은 “40살 명인이 진정한 명인”이라는 말을 남겼다. 바둑이 진정 삶의 축도(縮圖)라고 한다면 인생을 아는 자가 바둑의 고수가 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얘기다. 꿈같은 얘기다. 그래도 바둑 기사들은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엊그제 AI의 아버지로 통하는 샘 올트먼은 “인간이 AI의 하수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의 위력을 바둑 동네는 다른 누구보다 잘 안다. 바둑기사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대스승 AI의 품에 몸을 던져야 했다.
김은지 9단은 올해 18세, 최정 9단과 함께 여자바둑의 쌍두마차다. 그가 랭킹 10위의 강자를 격파하자 TV 해설자가 그에게 물었다. “바둑 공부할 때 사람 기보도 연구하나요.”
김은지는 안 한다고 했다. 전혀 안 하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했다. 바둑기사가 살기 위해선 AI에 몰두해야 하고 바둑이 살기 위해선 인간의 바둑을 두어야 한다. 인간의 바둑이란 뭘까. AI의 푸른빛에 연연하지 않는 것일까.
독립전쟁 같은 것일까.
이런 AI의 위력 속에서 신진서 9단은 세계 최강자로 우뚝하다. 다 같이 AI로 공부한다고 실력이 평준화되지는 않는다. 신진서는 AI의 가르침을 기억하는 대신 AI를 이해하고자 애쓴다. 그게 신진서의 공부다. AI를 이해하면 그만큼 AI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된다.
비록 한 줌에 불과하더라도 AI로부터의 자유를 얼마나 획득했느냐, 그게 인간의 바둑의 핵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AI 최초의 정복지가 바둑이다. 그곳 사람들은 꽤 많이 가슴 아파하면서도 인간의 바둑을 향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