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끼지 않은 말은 시가 아니다. 입 다물어야 속 차오르는 배추밭을 지나며…” 김용만 시인 신작 시집 시의 한 소절. 칼럼을 쓰는 시방, 창문 건너편에 보이는 배추밭. 김장철에도 살아남은 배추 포기들이 밭에 천불전처럼 좌정해 있다. 눈 내리면 배추밭이 아니라 눈밭, 얼고 녹고 해가며 단물 쭉쭉 오르겠다. 요샌 말이야 방방 시끄럽고 소란한 데 오래 앉아 있질 못하겠어. 입 다문 배추밭이 부럽고 그리워. 좋은 소문보다 나쁜 소문, 뜬소문, 가짜뉴스 발원지. 누구 좋단 소리보다 흉보는 게 또 가장 재밌다지? ‘아무말 대잔치’에 뛰어든 앵무새들이 누리소통망엔 정말 징하게도 많덩만. 사생활 보호에 취약한 유명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조차 해.
다이허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는 신영복 샘이 우리말로 옮긴 책. 밑줄을 그어둔 부분이 있다. “소문처럼 무서운 게 없죠. 이곳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타인의 사생활에 간섭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 사생활도 계급투쟁과 노선투쟁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니까. 사람에 따라선 그걸 이용해 열심히 갖가지 소문을 ‘만들어내서’ 개인의 목적을 이루고 있어. 그런 현상이 언제 불식되려나 모르겠어요.” 문화대혁명이란 이름의 아무말 대잔치와 비극의 역사.
소란스러운 자들이 어디서나 평온을 깨트린다. 거친 말과 불손한 태도, 애먼 간섭과 트집들. 이런 무례하고 안하무인인 인간 군상들이 새해엔 좀 변했으면 바라. 사람이 쉽게 변하진 않겠지만 말야.
엊그젠 상경하여 혜화동에 있는 한 서점엘 찾아갔어. 사회적 참사로 죽은 이들을 기리는 시인들의 추모 낭독회. 각지에서 모인 서른 명의 시인들, 더러는 구면이다. 차분하고 경건하게 낭독회는 진행되었고, 정제된 시어들을 나눴다. 다시 이 같은 참사들이 없길, 그래서 이런 낭독회도 없어야지 이구동성. 한 시인과 횡단보도 앞에서 작별하며 내가 그랬다. “이런 아픈 자리에선 안 봐야 하는데요.” 문득 소란한 대학로 건너편에 입 다문 배추밭이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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